시정칼럼/ ‘길 위에 김대중’의 교훈
시정칼럼/ ‘길 위에 김대중’의 교훈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4.01.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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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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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지난 28일 모처럼 사패산 산행을 마친 여덟 고교동문은 약속이니 한 듯이 <길 위에 김대중>을 관람하기로 하였으나 도무지 상영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친구가 딸에게 전화하여 서울 수락산 입구에 있는 롯데시네마 오후 5시 표를 예매했다.

일요일인데도 서울 시내에 상영관이 한두 곳뿐이라 어렵게 예약했다고 했다. 근데 전국 상영관 극장에 2,500여 개 스크린이 있는데도 정치적 부담이나 4월 10일 총선 때문에 소극적으로 오픈한 건 아닌지. 근처 커피숍에서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차담을 나누다가 결국 경로우대 7,000원으로 관람했다.

명화 <길 위에 김대중>의 줄거리다. 1971년 대선 시 100만 명 시민이 움집 했던 장충단공원 유세 장면을 보고 있자 감회가 남달랐다.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결한 1971년 대선은 1987년 6월항쟁에 의해 민주화를 쟁취할 때까지 치러진 선거 중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은 마지막 선거였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많은 대학생과 부정선거를 감시하기 위한 선거참관인단에 참가했다. 수많은 부정선거를 직접 목격한 나머지 신민당 당사를 방문해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일이나, 6월 항쟁 민주화 투쟁을 여러 대학에서 군사독재 타도, 3선 개헌과 대학 병영화 저지 운동했다. 그래서 1971년 10.15 위수령을 발동하여 대학을 폐쇄하고 학생 간부들을 강제로 제적, 불법 구금, 구속하여 170여 명을 강제로 입영 최전방에서 복무케 했다. 필자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길 위에 김대중'은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은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이야깃거리를 담았다.

1924년 일제강점기 전남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의 청년 사업가로 성공, 6.25 전쟁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치계 입문, 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을 반대하다 교통사고와 납치 후 구사일생으로 귀국, 신군부 세력에게 5·18 민주화운동 배후 조종의 내란음모로 사형선고 등 김대중의 삶은 한국 현대사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이제껏 전직 대통령의 삶을 다룬 영화는 '길 위에 김대중'과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까지 단 세 편이다. 그중 대통령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한국 현대사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길 위에 김대중'이 유일하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사형수,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세 번의 대선 낙선을 거친 낙선전문가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을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미공개 자료들과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를 끌어모으고 그와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어쨌든, 1987년 이전을 경험한 세대들은 역사를 돌아보고 반추하는 ‘추억의 영화’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것은 민주화 이전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다. 이 영화가 특히 의미 있는 것은 현 상황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어받은 더불어민주당은 촛불 항쟁 덕분으로 집권했지만 오만과 탐욕,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등으로 촛불에 의해 탄핵당한 보수세력에 정권을 내줬고, 집권한 윤석열 정권은 역사의 시계 바퀴를 뒤로 돌리고 있다.

<길 위에 김대중>은 정치권에 정치가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길 위에 김대중'은 정치인이자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모습보다는 한국 현대사 질곡의 길을 걸어가며 보여준 김대중의 신념에 관한 이야깃거리였다.

어쨌든,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를 추구하는 의회주의자 김대중은 길 위에서 연설하고 대중과 함께했다. 납치, 가택연금, 투옥 등 다섯 번의 죽을 고비와 세 번의 낙선, 광주 항쟁, 망명 등 어려운 시대적 상황마다 비전을 제시하고, 역경을 뚫고 나갔다.

그리고 ‘길 위에 김대중’을 통해 제대로 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깨우쳐 준다. 김대중은 길 위에서 행동하는 양심 있는 정치인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관객들이 돌이켜 보아야 한다. 정치적인 의도에서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권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억울해서 눈물 났다", "일제 식민지 외딴섬에서 태어나 민주화에 노력하고 나아가 6·15남북공동선언을 끌어내 민족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운 분이다“, ”유일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파란만장한 인간 승리의 영화다". 함께 관람했던 동문도 한마디씩 여운을 남겼다.

말로만 들었던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도전 의식에 감동하였다. 무엇보다도 상황에 대한 명석한 판단력과 추진력으로 자신의 신념을 이뤄나가는 인간 승리를 이뤄낸 김대중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다시, 곧 나타나서 평화로운 조국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 정치가 중 가장 인생에 굴곡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만큼, 다른 영화적 허구가 없어도 ’길 위에 김대중‘은 충분히 흥미진진한 서사를 담아냈다. 특히 1980년 내란음모죄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돼 '미래'를 예언한 선구자로서의 모습은 감탄 받기에 충분했다.

1981년 사형수로 교도소에 수감 돼 있던 인물이 2000년대 인터넷과 PC 보급, 더 나아가 주 4일제와 AI 및 아이폰 시리(Siri)까지 예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선구안이자 정책 덕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생길 수 있는. 선입권을 배제한다면 보수나 진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인간 김대중에 대한 이해와 저변에 깔린 철학과 신념에 대해 2시간에 잘 녹여낸 영화임이 틀림없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