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광장 / 빨간색 구두 한 짝
인문학광장 / 빨간색 구두 한 짝
  • 임 종 선 전 광주연초제조창 노조지부장, 수필가
  • 승인 2024.02.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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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종 선 전 광주연초제조창 노조지부장, 수필가
임 종 선 전 광주연초제조창 노조지부장수필가
임 종 선 전 광주연초제조창 노조지부장수필가

[시정일보] 걷기 운동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정보에 따라 이웃 비엔날레를 약 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 것 이 일과가 되었다. 비엔날레 정문 1층 입구 우측 벽면에 ‘거시기’라는 안내문이 시선을 끈다.

비엔날레 전시관을 관람한 지도 꽤 오래되어 시설물의 위치 등은 등하불명(燈下不明)이다. ‘거시기’, ‘머시기’는 우리 지역 전라도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사투리 중에서 타 지역 사람들의 조롱 섞인 말로도 들리지만, 그 깊은 뜻에 숨겨있는 어떤 미지의 환상적인 것이 내재된 것 같은 궁금증과 많은 호기심을 갖게 하였다.

공원 우측 길목에 문관석, 무관석 등 돌 장석 등이 옛날 높은 관직의 위상을 서로 뽐내듯이 시샘하는 것 같았다. 높이 약 10*50센티미터의 앙증맞은 ‘벅수’도 인사하는 것 같았다.

마을에 잡신의 접근을 막아 주는 수호신 ‘석장승’은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는 경계표시 와 이정표의 역할까지 하기에는 왜소하고 너무 벅찬 ‘벅수’의 모습이었다. 먹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비둘기가 쉼터로 모여든다.

과자를 먹을 수 있도록 부수어 주면, 처음에는 한두 마리에서 10여 마리 이상이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하얀색 두세 마리가 한가운데를 차지하면서 갈색의 비둘기들을 얼씬도 못 하게 바깥쪽으로 내쫓았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존경쟁이 치열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욕심을 부린 그들이 괘씸하게 생각되어 일부러 먹이를 바깥쪽의 비둘기들에게만 익조가 아니므로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아파트 벽에 부착된 안내문을 보고서는 먹이를 준비하지 않았더니 갈 때마다 비둘기들이 먹이를 또 던져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인지 반가

운 표정으로 앞에서 서성거렸다.

좌우의 구별이 없는 빨간색 여자 구두 한 짝이 공원 한복판에서 눈길을 끈다. 가정불화로 정신없이 한쪽 신발만 신고 긴급히 가출한 여인을 연상케 하였다.

한 짝 신발을 보고 ‘멀리 달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안정감에 집에서 한숨 돌린 남편의 심정보다도 멀리 갈 수 없는 처절한 여인이 신세 한탄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을 모습이 한없이 애잔하고 애처롭게 생각되었다.

일부 산책객 중에는 반려견을 짧은 줄에 매어 앞장서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고 있다. 산책객 중에 약 10% 이상 반려견과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할 때, 인간의 생활공간에서 반려견이 사회 가정 모든 영역 절반 이상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격세지감을 갖게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따스한 햇볕을 만끽하면서 유모차에 실려 어린아이의 행세를 하고 있는 반려견의 모습이었다. 인간만이 향유하고 있는 사랑, 정감, 배려, 먹이, 정성 등이 가족처럼 반려견이 주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어 인간이나 가족에 대한 정성 사랑 등이 너무 소외되거나 저하될까 우려가 앞섰다.

50년대 전후에 혹독한 흉년(기근)으로 일부 부유한 가정을 제외하고 모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왔던 비참한 추억이 뇌리에 항상 각인되었다. 이른 새벽이면 남의 담장을 넘어 감나무 밑에 떨어진 홍시를 주워다 땡감은 물에 우려서 된장과 함께 먹으면서 끼니를 대신했었다.

비엔날레 공원 내의 감나무 밑에 먹음직스러운 홍시를 볼 때마다 흉년에 주워 먹었던 옛날의 추억 때문에 베레모를 쓴 작가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치와 함께 나누었다.

요즘 감나무에는 홍시가 아닌 갈색으로 변한 잎만이 차가운 바람에 힘없이 매달리고 있으면서 늦가을 잔디와 낙엽을 쓸어내는 분무기의 요란한 기계 소리와 함께 짧은 한 해의 아쉬움을 지우면서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고유 문화예술의 전시를 통해서 국위 선양을 하고 있는 비엔날레는 내 고장의 명소로서 즐겁고 자랑스러운 공원을 산책할 수 있어 항상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던져주었더니 하얀색 비둘기들이 잽싸게 먹이를 낚아챈다. 그러나 갈색들은 대꾸도 하지 않고 자포자기 상태로 나의 눈치만 보고 주위를 맴돌고 있어 안타깝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