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현대적 효행(孝行)이란
시정칼럼 / 현대적 효행(孝行)이란
  • 최 기 복 논 설 위 원
  • 승인 2024.03.14 10:15
  • 댓글 0

최 기 복 논 설 위 원
최 기 복 논 설 위 원
최 기 복 논 설 위 원

[시정일보] 부산지역 기초단체 한 곳의 출산율이 0.5% 선으로 하락했다는 로컬방송 뉴스를 접하면서, 저출산ㆍ고령화에 생각보다 훨씬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생각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출산이란 결혼의 목적이며 생명윤리의 승계다.

생판 모르는 남(男)과 여(女)가 만나 부부가 된다. 부부는 자식을 낳으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생물학적 관계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대를 이어가는 상속자로서 어머니에게는 분신으로서의 사랑의 수급이 이뤄진다. 자식이 없다면 부모의 입장이거나 자식의 입장에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단절의 미래를 만든다. 대한민국 결혼적령자의 20% 내외는 그래도 결혼은 필요한 것이고 결혼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80%는 결혼 의사가 없거나 결혼을 회피하겠다고 한다.

국민 없는 국가는 생각할 수도 없지만 궁여지책으로 줄기세포를 통해 사람생산공장을 건립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무자식 상팔자를 외치며 가정의 대를 끊는 행위는 국가의 명맥을 끊는 행위다. 지상에 나타나 있는 일상화된 패륜범죄와 자식의 생명 유린을 장난처럼 해대는 젊은 부부들은 사람인가? 짐승인가? 짐승만도 훨씬 못한 타락한 쾌락주의자 들인가?

쾌락은 인간에게 종족보존에 대한 神의 보상으로 봐야 한다. 패역범죄는 인간이기를 거절하는 것 외에 神의 저주를 불러오는 행위다. 자신의 혈육도 사랑하지 못하는 그들에게서 부모의 은혜를 논하거나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내로남불의 사조가 몰고 온 가치체계의 붕괴다. 권리에는 집착하되 책임과 의무를 면탈하려는 극심한 이기주의가 원인이고 더 근원적인 이유는 효행교육의 부재다.

지금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주고 있는 거액의 출산장려금이 출산부부에게 도움은 되겠지만 지원금을 줬다는 이유로 양육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책임을 유기한 부부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고 자금을 회수할 수 있겠나? 출산장려책으로서 바람직한 것인가?

고민 없는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국민 복지부문에 쏟아부은 예산은 얼마인가? 그 예산 중 국민인성교육 생명윤리교육 효행교육을 위해 할애된 예산은 몇 %나 되고 관심 갖는 위정자는 누구인가?

의원 입법으로 제정된 효문화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인성교육진흥법은 존재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조례가 제정돼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이에 대한 획기적인 시도도 없고 그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공모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효가 무엇인지 인성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모르는 공직자들과 공모사업만 노리는 전문 워딩과 그룹들의 수중으로 비싼 세금만 날리고 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공약에 효행교육 인성교육에 몸 바쳐서 생명이 단축돼 가는 대한민국의 생명을 영속시키겠다는 후보도 보이지 않는다. 잘 사는 나라, 신흥 경제 강국, 무역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는 사라지고 저출산ㆍ고령화라는 비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양극화 논리에 휩싸인 가치체계의 붕괴도 막아야 한다. 고전적 효란 지은(知恩)과 보은(報恩)의 철학이고 가장 보편적인 가치다.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국가의 은혜를 모르면 감사할 줄 모르게 된다. 감사를 모르면 보은도 모른다. 그 결과는 인간이기를 거절한다. 하여 효의 통로는 수급을 전제로 한다. 과거 고전적 효가 직계존비속 간의 수요와 공급 관계였다면 현대적 효는 그 대상을 넓히는 일이다. 은혜를 입은 모든 대상에게 최소한은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 주는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부모에게 입은 만큼 자식에게 돌려준다는 견강부회식 워딩으로 자위하지 말고 당사자 위주의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늦지 않았다. 고전적 효행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은혜 갚음을 기치로 하여야 한다. 효심은 감사의 마음이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