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시혜 아닌 보답이다
시정칼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시혜 아닌 보답이다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4.03.25 13:32
  • 댓글 0

임춘식 논설위원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사회학 박사)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65세가 되면 누구나 지하철 운임이 무료다. ‘노인 티’를 내기 싫다며 이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노인 대부분은 요긴하게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팍팍하게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이동권을 보장하는 큰 활력소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는 1984년 도입되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2017년 무임승차 연령 상향이 처음 검토되었지만, 노인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어쨌든 정치권은 노인 표를 의식해 나이 조정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소극적이다.

작년 2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하철 만성 적자의 주요 원인이 무임승차이며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무임승차 연령 상향 논의가 불붙은 가운데, 홍준표 대구 시장마저 무임승차 나이를 70세로 상향하자고 주장했다. 사실 국민 전체로 보면 비용부담 주체가 중앙정부냐, 지방자치단체냐는 그렇게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올해 1월에는 지하철공사가 ‘적자 원인 중 하나가 노인 무임승차’라 하였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무제한 노인 무임승차는 폐지하고 대신 노인 1인당 연간 12만 원의 선불 교통카드를 지급하자”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 단체는 코웃음을 쳤다. 오뉴월 화

롯불도 쬐다가 안 쬐면 섭섭하다는데 연령 상한도 상식적으로는 맞지만 수혜자들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로 판정패를 당했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불가피하게 축소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축소할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는 바람직하지만, 노인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최대한 이런 논의를 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표가 떨어지는 얘기라도 올바른 얘기를 하겠다”고 했다. 어려운 숙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만 본다면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어쨌든, 노인 무임승차가 가능한 나이를 높이는 방안이나, 특정 시간대 탑승 때 요금을 받자는 방안, 아예 폐지하자는 방안 등은 모두 「노인복지법」과 기타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사안은 결국 입법자인 국회와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다. ‘노인 때문에 지하철 적자 말 안 돼’라고 하면서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데도 애써 모른 척했다. ‘내 임기 중에만 피하면 된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의식이다.

과연 지하철만의 문제일까?
지하철 무임승차 적용은 대중교통 문제에 국한해서 볼 문제가 아니다. 지하철 무임승차 나이를 올려버리면 짧게 보면 고궁·박물관 요금 논란으로 번질 수 있고, 멀리 보면 연금 수령과 정년퇴직 연령까지 여파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가 정치권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인에게 공짜로 지하철표를 나눠주는 것은 과잉복지라는 주장도 있다.

또 걱정이다. 오는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다양한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전국 6만8180개 경로당과 366개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에게 매일 무료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참 좋은 공약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재원 충당 때문에 머지않아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처럼 심각한 문제로 드러날 것임이 뻔하다. 복지제도는 대부분 정치적인 포퓰리즘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수정하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처럼 누군가 공짜 혜택을 본다면, 그 뒤에선 누군가 값을 치러야 한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둔다면 그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게 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비싼 청구서로 돌아온다. 혜택은 노인 세대가 누리겠지만 결국 젊은 세대가 이 돈을 내야 한다.

비용 논리 아닌 효과 논리로 보자
어쨌든,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철저히 ‘비용’ 논리로 소모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2023년 1일 평균 지하철 탑승객 187만8000여 명 중 65세 이상이 21만여 명으로 11.8%에 달한다. 그리고 장애인과 국가유공자까지 포함하면 14.1%에 이른다. 1일 적자가 무려 2억4000여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연 8753억 원이나 되는데, 그중 50%가 무임승차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토부가 대한교통학회에 의뢰하여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열차는 승객 승차여부와 상관없이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있더라도 실질적 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없다’라고 명백히 밝히며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 적자에 영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