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서울성곽 ‘교남동엔 역사향기가’
경교장~서울성곽 ‘교남동엔 역사향기가’
  • 시정일보
  • 승인 2008.06.2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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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맞춤형 관광코스개발 첫 사례로 교남동 꼽아 소개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 남쪽에 있어 교남동(橋南洞)으로 불리는 이곳은 서울 사는 사람조차 생소한 지역명이다. 교남동은 종로구 북서쪽에 위치한 동네로 엄연한 법정동이며 평동, 송월동, 홍파동, 교북동, 행촌동 등을 아우른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서부 반송방(盤松坊), 일제 때는 교남정으로 불리다 해방 후 교남동으로 불렸다. 당초 행정구역은 서대문구였으나 1975년 종로구로 편입됐다.
교남동은 오랜 역사만큼 우리 선조의 숨결이 동네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돈의문(敦義門) 터가 있고 대한민국 임정 주석 김구 선생이 머물다 사망한 경교장, 친일논란의 한 자리를 차지한 홍난파 선생의 가옥,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의 주인공 권율 장군의 집 터, 3.1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UPI통신사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딜큐샤’, 서울성곽 등이 교남동을 지킨다. 종로구는 이들 문화역사 유적을 답사하는 ‘탐방코스’를 만들었다. 탐방코스를 따라 한걸음씩 걸어보자.
돈의문은 세종의 애민(愛民)정신이 깃든 문이다. 선왕 태종의 측근이자 세력가인 이숙번이 자신의 집 앞으로 큰 길을 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람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었으나 세종은 1422년(재위 4년) 돈의문을 완성했다. 돈의문은 이후 중국과의 교역통로로 화려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으나 일제 때인 1915년 전차궤도 복선화 명목으로 철거됐고,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앞에 그 표시만 남았다.
돈의문 터를 확인하고 강북삼성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경교장’을 만난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이 1945년 입국, 1949년 6월26일 안두희의 저격에 사망하기 전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했다.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돼 있다.
경교장에서 나와 병원 오른쪽의 골목길로 접어들면 서울성곽 근린공원이 나온다. 공원 조성공사가 한창인 지역의 오른쪽 길을 오르면 하얀 둥근 건물에 아치형 창문이 나있는 옛 기상청 건물(현 서울복지재단)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백엽상과 식물표본 등 기상청의 흔적이 남아있다.
기상청 건물에서 내려오면 붉은 벽돌에 뾰족 지붕을 가진 집 한 채를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90호로 지정된 ‘홍난파 선생 가옥’으로 지난 2004년 종로구가 매입, 작은 공연장과 전시장을 마련했다. 지금은 어린이를 위한 체험학습장으로 사용되며 청소년 가곡제와 난파어린이동요대회, 어린이봉숭아축제 등 프로그램이 기획 중이다.
홍난파 선생 집을 나와 언덕을 오르면 수령 45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임진왜란 중 2800명의 군사로 왜군 3만을 격퇴시킨 권율 장군의 생가 터를 기린다. 나무 아래로 ‘임진왜란에 행주대첩을 거둔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집터’라는 비석이 장군을 대신해 서있다.
은행나무 바로 맞은편에는 ‘딜쿠샤’란 오랜 벽돌건물이 보인다. 힌두어로 이상향(理想鄕)을 뜻하는 ‘딜큐샤’는 3.1독립만세운동을 세계에 알린 UPI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집으로, 현재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은행나무 뒤쪽 통로를 지나면 개미연립 옆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은 서울성곽 길로 들어서는 진입로이며 인왕산, 사직동, 무악동 등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는 길목이다. 서울성곽을 따라 등산하듯 오르면 서울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서 하늘을 보며 쉴 수도 있다.
<방용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