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맛과 멋 사라지는 서울
600년, 맛과 멋 사라지는 서울
  • 방용식 기자
  • 승인 2008.11.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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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흔히 말할 때 600년 고도(古都)라고 말한다. 혹자는 ‘600년’이 아쉬울지 모른다. 서울이 역사에 등장한 한성백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의 역사는 이미 2000년이 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서울이 국도로 정해진 건 1394년(태조 3년)이다. 서울에는 경복궁이 있고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등 고궁과 종묘 등 문화재가 산재하다.

그러나 경복궁 등 고궁과 종묘는 왕조의 흔적이다. 본래 문화재라는 게 왕가나 귀족(또는 사대부가)의 삶의 모습이지만. 서울에는 이런 특권층이 누린 호사(豪奢) 말고는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 거의 없다. 또 있다손 치더라도 각종 개발에 떠밀려 흔적만 남길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종로 뒤편 ‘피맛골’이다. 몇 년 전부터 불어 닥친 도심재개발이란 명분아래 피맛골은 옛 정취를 모두 잃어버렸다. 서민들을 위한 주류(主流)공간이던 피맛골은 도로 옆 부자연스럽도록 솟아 있는 거대한 빌딩 속에 자취를 감춘 채 부록(附錄)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빌딩 틈바구니에 옹색하게 솟아있는 홍살문에 새겨진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남산 한옥마을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순정왕후 윤씨 친가를 비롯해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오위장(五衛將)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 조선후기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집이 이전ㆍ복원돼 있다. 그러나 이곳의 한옥들은 말만 복원이지 야생동물을 우리에 가둬놓은 동물원과 다르지 않다. 박제(剝製)됐다. 차라리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둬 외국관광객과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서울시가 25일 발표한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 수립 용역’도 비슷한 형국이다. 서울시는 종로구 체부동 일대 49만5000㎡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서 예정구역 내 한옥을 특정한 지점으로 이축하거나 한옥으로 신축하기로 하고 용역발주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지역주민들의 불편과 재산권 행사제약을 그동안 막아왔던 현실을 감안할 때 서울시의 방안은 일면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와 현대의 첨단기술이 적절히 배합된 외국도시를 볼 때 그렇지 못하는 서울이 안타깝다. 서울시나 국가가 나서서 한옥소유주 또는 입주민에게 금전적이든, 행정적이든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서울다움’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서울답지 않은 서울에서 외국관광객 1200만 유치는 한낱 공염불일 뿐이다. 외국관광객은 마천루를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