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
  • 시정일보
  • 승인 2008.11.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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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 되찾기 시민단체 장 병 영 대표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과 의지가 궁금하다.
자신의 자리를 걸고 작금의 역사 상황에 대한 충언을 할 참모는 있는가?
조선의 임금은 하루에 네 번씩 젊은 경연관(經筵官)들과 함께 학문을 토론한다. 임금에게 직강을 통한 바른 통치를 위한 과외를 받는 것이다.
아침에 하는 경연을 ‘조강(朝講)’, 점심에 하는 경연을 ‘주강(晝講)’, 저녁에 하는 경연을 ‘석강(夕講)’이라고 했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밤에도 다시 경연관을 부른다 하여 ‘야대(夜對)’라고 했다.
임금이 바른말(直言)을 할 줄 아는 젊은 신하들과 더불어 학문을 탐구하는 것은 고금의 역사를 살펴서 바른 정치를 구현하자는 것이며, 또 민심의 향배를 바로 알기 위한 허심탄회한 만남이기도 했다.
중종 12년 4월4일의 조강에서 있었던 일이다. 특진관 ‘이자건’이 중종의 면전에서 아주 혹독한 직언을 입에 담았다.
“강원도에는 서리가 오고 눈이 내려 보리가 얼어 죽었다 하고, 여러 변괴가 함께 겹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성상께서 성심이 지극하지 못해 그런가 싶습니다.”
정말 기막힌 충언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이 정치를 잘못해 재앙이 있다고 직언하는 것이 바로 ‘도덕적 용기’의 시작이다. 출중한 지도자라면 부하들의 이런 도덕적 용기를 상찬하며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신 봉승의 조선의 마음에서)
500여 년 전에 그야말로 절대 권력의 상징인 임금 앞에서도 임금으로서는 참으로 듣기 힘든 신하의 직언을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민주화가 찬란하게 어쩌고저쩌고하는 시대에 대통령의 비서관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불편한 말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절대 권력의 상징인 조선시대의 임금 앞에서 거침없는 직언을 한 신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2007년 2월 3일자 조선일보 사설의 ‘『바람직한 대통령像』도 말 못했다니’의 내용이다.
조기숙 전 청와대 수석이 자신의 책에서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나 바람직한 대통령상에 대해 조언하는 것이 성역에 속했다”고 썼다. 주로 여야와 언론을 비난하는 책이지만, 이렇게 청와대 내 분위기를 전해주는 부분도 있다.
책에 따르면 결국 청와대 누구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거나 “대통령은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낼 수 없었고, 실제로 대통령에게 그런 직언을 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상을 밝히는 첫 증언이 나온 셈이다.
대통령의 개성이 적절히 발휘되면 국민과의 친밀감을 높여서 리더십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선 그 개성이 국민과 가깝게 만드는 게 아니라 편을 갈라 공격하고 싸우는 스타일로 표출돼 왔다.
“대통령은 자신의 스타일을 거론하는 것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시한다”라며, 지난달 4일 경제상황 점검회의에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말을 줄여 달라”고 고언을 하자,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모독 말라”고 격분했다.(중략)
조선시대의 임금은 백성들이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임기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그런 임금들이 하루에 네 번씩 직언할 수 있는 신하들과 만나서 학문을 연마하고, 역사를 되돌아보며 국가운영의 방향을 자문 받았다는 사실에 존경을 표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역사 앞에서는 경건해야 하며, 고위공직자일수록 역사인식이 치열해야 한다. 역사가 얼마나 준엄하게 흘러가는지를 실감할 때는 언제쯤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장이나 역사학자에게 주변국의 역사왜곡과 우리역사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는 보도는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과 의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