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와 정권, 서로 존중해야
공직자와 정권, 서로 존중해야
  • 시정일보
  • 승인 2008.12.24 14:50
  • 댓글 0



1급 공무원들의 일괄사표가 각 부처로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이 다 돼가도록 관료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채 여권 핵심부와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정의 축인 정권과 국정의 바퀴살인 관료는 통상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 후 관료사회는 정권교체가 됐는지 안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나 활력이 없이 겉돌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맥락에서 각 부처가 미리미리 인사쇄신을 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공직자들은 국민들의 자신에 대한 불만을 아프게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잃어버린 10년’동안 각 부처에서 성장해온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경계심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정부문서가 고스란히 여당으로 넘어간 적이 있는가하면 무슨 지시를 하면 뭉개기 십상이며 정치적 중립성은커녕 개인적 이념조차 버리지 못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 정부가 역점과제로 내세우는 중요 입법 사안에 대해서도 각 부서가 이리저리 미루다 의원 입법으로 넘어간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공무원을 내 편으로 생각해 내가 먼저 고생할테니 따라와 달라”고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지난 가을부터 당정회의에서는 공무원들에 대한 고강도 인사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러차례 나왔다고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의하면 “공무원들에게 ‘힘’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정권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 아니냐는 말들까지 나왔다”며 “이번 인사쇄신은 각 부처로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일부 공무원들은 ‘작은 정부’와 ‘공직자 머슴론’의 기치를 내건 이명박 정부를 아직도 관료사회의 내부를 잘 모르는 ‘점령군’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초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해 밤 늦게까지 야근하는 ‘얼리버드’가 유행했는데 정착 청사 주차장을 유료화해 차를 못가지고 다니게 했다. 이런 넌센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지적이다.
정권교체의 벽이 그만큼 높았던 탓도 크다. 현정부는 종부세나 출자총액제한제 등 이전 정부의 정책을 정반대로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공무원들이 아무리 영혼이 없다지만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자신이 했던 일을 뒤바꿔야 하는 심정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실례로 일부 공무원은 그런 이유 때문에 자진해서 보직을 바꾼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고위 공무원 물갈이가 가시화되면서 공직사회는 더욱 경직되고 있는 분위기다. 요즘 사석에서 현 정부를 비판했다가 감찰반에 걸리면 징계를 받는다는 말까지 떠돈다. 공무원끼리 밥 먹을 때도 말 조심하는 분위기인데 사기가 높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정권이 인사를 통해 공무원들의 충성심이나 장악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만 바꾼다고 관료사회가 장악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권이 먼저 그동안 관료들이 해온 일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활용해 정부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이 필요한 때다. 공무원은 정권을, 정권은 공무원을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