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정부
국민과 정부
  • 시정일보
  • 승인 2009.01.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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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정병운 행정학박사ㆍ백석대학교 겸임교수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는 우리의 경제현실을 뒤흔들어 놓아 국민 모두의 생활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세계가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하나의 중대한 사건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경제위기는 정부의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행정행위의 개입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 바, 사실상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정은 인류문명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행정은 아주 오래된 사업(old and old enterprise)인 것이다.
일례로, 동양의 고대문명은 강(江)의 통제를 중심으로 하는 수리(水利)에서 등장했다. 예컨대 통치(統治), 법(法), 결정(決定)등의 문자는 물(水)을 상징한다. 수리사회는 물을 이용한 식량공급 증대와 사회통제를 핵심목표로 삼았는데 이를 위한 교통, 교역, 신기술과 지식축적 등이 모두 행정과 관련된다.
이러한 행정은 초기 국민생활에 대한 소극적 관여자로서 불간섭이 최선인양 하던 시대도 있었으나, 18C후반과 19C 고대 국민국가(Nation state)를 거쳐 20C의 현대에 이르면 산업화ㆍ도시화가 야기한 각종 사회문제의 해결에 적절한 기술관료국가(Technocratic state)개념이 대두되고 국가자체가 경제관리 및 산업분야에 깊게 개입하게 되면서, 언제 어느 때든지 발생가능한 모든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야 할 일종의 무한책임보험회사(Unlimited-liability insurance Company)의 위치에 다다르게 되었다.
실제 생활에 있어 사람이 살다보면 화재, 도난, 교통사고, 질병과 상해 등 미래의 재난에 노출되기 쉬운데, 만일 그 재난이 닥치면 혼자 복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험료를 내고 보험을 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부 역시 다수의 국민이 직면할 우려가 있는 많은 문제들을 커버해 주어야 하는 보험회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정부가 민간 보험회사보다 공공성이 훨씬 강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정부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최종 안전판(safeguard)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국민이 내는 세금은 보험료이고,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보험금과 유사하다. 결국 정부는 국민의 위험을 책임지고 분산시켜 평소에는 보험료인 세금을 알뜰히 관리해 주고,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에는 언제나 신속히 문제현장으로 달려가 피해를 최소화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일종의 무한책임 보험장치이다. 그러므로 현대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 방향은 참여행정, 고객지향행정, 생산적 서비스행정 그리고 능률행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현대정부의 규모확대와 권한강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행정국가적 경향은 국민의 정치적 자유 및 참여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위협하기 쉽다. 이는 곧 민주주의에 위협적이며 행정 책임성의 회피문제를 대두시키기도 한다. 또 문화와 환경의 미학적 가치도 위협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치적 통제의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왈도(Waldo)가 지적하듯이 거대정부의 역기능이 크다고 해서 행정의 위력과 그간의 창조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처사는 아니다. 행정이 본질적으로 위대한 이유는, 행정이 문명의 출발에 기여했고, 특히 정부 관료제가 대규모의 과업 전문적ㆍ목적지향적 조직을 구축하며 물질문명에 기여해 왔다는 점이다. 비록 현대에 들어와 반(反)정부적 감정이 다소 커졌지만, 정부의 근본적 중요성과 존재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는 더 큰 문제라 하겠다.
강조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기관이다. 따라서, 자국의 정부가 정직성ㆍ효과성ㆍ능률성ㆍ경제성 등의 자격조건을 갖춰 좋은 정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이 정부를 적극 유도해 주는 것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주변이 매우 어수선하다. 경제현실이 그렇고 정치현장이 그렇고 국민들의 얼굴표정이 또한 그리 밝지 못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원칙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는 정부와 관료들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안도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깜짝 이벤트나 일회성 전시효과를 통한 인기영합적 발상이나 대증요법이 아닌 국민이 진실로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그들에게 희망의 샘이 솟게 하는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킹(King)의 말에서 처럼 국민은 하나님(God)께 원하면 무엇이든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를 지나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거쳐, 이제는 모든 것을 정부(Govern ment)에 의지하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정부와 관료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