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구 통합 설왕설래, 말잔치로 끝나나
시·군·구 통합 설왕설래, 말잔치로 끝나나
  • 방용식 기자
  • 승인 2009.10.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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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서 접수 시·군 34곳…실제통합 3곳이면 성공
일부 단체장 통합반대 ‘신 관권선거’ 움직임 포착
국회의원도 “서둘지 말고, 자율적으로 추진” 주문

6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9층 회의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원유철·이명수 의원 등은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 “누구를 위한 ‘자율’인가”라고 물으며 정부의 시·군 통합 주도에 일침을 가했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30일자로 통합을 희망하는 시·군 34곳에서 통합건의서를 제출받은 데 이어 이달 16일부터는 주민여론조사를 실시한다는 일부신문의 보도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우려가 극명하게 표출된 것이다. 시·군 통합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국회의원 선거구가 변경되는 등 ‘실질적인’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전국 행정개편 예상안
10월1일 현재 행정안전부에 통합건의서를 제출한 곳은 34개 시·군이다. 통합이 거론되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46개 시·군이다.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은 남양주·구리, 안양·의왕·군포·과천, 의정부·양주·동두천, 성남·하남·광주, 수원·화성·오산, 여주·이천, 안산·시흥이다. 충청권은 청주·청원, 괴산·증평, 천안·아산, 홍성·예산, 부여·공주가 포함됐다. 호남권은 전주·완주를 비롯해 여수·순천·광양·구례와 목포·무안·신안에서, 영남권은 구미·군위, 마산·창원·진해·함안, 진주·산청에서 통합건의서가 제출됐다.

이중 쌍방이 건의한 곳은 10곳이고 대상지역이 서로 일치하는 곳은 청주·청원, 전주·완주, 성남·하남·광주, 여주·이천, 구리·남양주 등 5곳이다. 통합대상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곳은 목포·무안·신안, 안양·군포·의왕 등 5곳이며 과천, 화성 등은 건의서가 접수되지 않았는데 인근 시·군에서 통합을 건의했다. 안산·시흥, 부여·공주, 천안·아산, 홍성·예산, 괴산·증평, 군위·구미, 산청·진주, 여수·순천·광양·구례 등 8곳은 한쪽에서만 통합을 원했다.

행정안전부는 연말까지 주민여론조사, 주민투표 등으로 통합여부를 결정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거쳐 7월 통합자치단체가 출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여론조사는 통합대상 46개 시·군별로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찬성률이 50~60%를 넘으면 의회에서 주민투표 여부를 결정한다. 주민투표 결과 유권자의 1/3 이상이 참여하고 과반 이상 찬성할 경우 통합이 확정된다.

통합, 변수 커…통합市 많지 않을 듯

시·군 통합은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지방자치제가 본격 출범한 1995년 이후 학계와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찻잔 속의 미풍’에 그쳤다. 이후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을 비롯해 우윤근·박기춘·허태열·이명수 의원 등이 지방행정체제 개편 관련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7일 시정연설을 통해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향을 천명한 데 이어 지난 8월15일 제64주년 광복절 기념 경축사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다시 한 번 강조, 불을 지폈다.

하지만 시·군·구 통합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청원·완주군수 등 자치단체장은 통합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지역주민 역시 통합에 적극적이지 않고, 여론도 찬·반으로 엇갈린다. 실제로 전주·완주 통합을 추진하는 민간단체는 14일 행정안전부를 방문, 완주군이 이장과 부녀회장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통합반대 운동을 벌인다며 관련자 조사를 촉구하고 공무원의 관권개입사례 등을 담은 진정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강병규 행정안전부 2차관은 14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일부 자치단체의 조직적 통합반대 운동 사례를 적시했다. 강 차관은 “통합지역은 2014년을 목표로 한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시금석이다”며 “단체장들이 주민여론을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 행정안전부가 관권선거를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주도의 통합에 반대하는 일부 국회의원들도 걸림돌이다. 지난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 원유철 의원은 “의회 의결만으로는 주민의 대표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주민투표를 통해 통합의사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이는 여론조사결과 찬성이 60% 이상일 경우 지방의회 의결로 통합이 가능하도록 한 행정안전부 계획과 배치된다. 이명수 의원도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일방의 자치단체 의견과 여론만 참고한 통합추진은 자율통합을 빙자해 강제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고 규정하고 “여론조사, 주민투표 등 절차적 정당성보다 민의(民意)의 성숙과 수용이 우선이며, 최소 3~4년 시간을 두고 자율통합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계획대로 시·군 통합이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목숨을 걸고 있다”는 행정안전부 관계자의 말에서 긴박감이 느껴진다. 강병규 차관 역시 “영·호남과 충청권, 수도권에 1곳씩 3개 정도였으면 좋겠다”며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정부, 획기적 지원 약속 밝혔지만

정부는 통합 시·군·구에는 교부세액 수준을 5년간 보장하고, 1년분 보통교부세액의 60%를 10년간 추가로 나눠준다는 계획이다. 이럴 경우 통합이 논의되는 청주시에는 약 2000억이 추가 지원돼 지역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또 50억의 특별교부세를 10년간 지원하고 자치단체 매칭비율을 인하하는 등 광역발전계정 상 특례도 지급한다.

통합지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재 추진 중인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은 예산집행 시 우선 배정하고 장기임대산업단지 입지선정을 먼저 고려하는 한편 생활권에 따른 학군 재조정과 함께 기숙형高·마이스터고·자율형사립고 지정 때 우선 고려하고, 읍·면이 동(洞)으로 전환할 경우에도 면허세율과 특례입학자격 등을 그대로 부여하기로 했다.

강병규 차관은 “통합 시·군·구에는 행정안전부 등 7개 부처에서 18개 지원시책을 마련, ‘획기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면서 “구리와 남양주가 합칠 경우 남양주시 외곽지역의 그린벨트 이용 등 도시계획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방안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통합이 논의 중인 일부 시·군·구는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과거 도·농 통합 때 정부의 지원이 별로 없었다는 경험 탓이다. 청원군을 최근 다녀온 백운현 행정안전부 차관보는 “지역에서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1995년과 1998년 도·동 통합시가 출범할 때 정부는 특별교부금 20%를 지원하는 것외에 지원시책이 없었다. 결국 ‘신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無信不立)’는 말이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현재 통합논의가 제기되는 시·군·구가 계획대로 모두 합쳐질 경우 재정인센티브, 행정비용 절감, 주민편익 증가 등에서 10년간 3조9182억(인센티브 2조866억, 공공요금인하 등 1조8316억)원의 효과가 생긴다고 추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주·청원은 4480억(1인당 52만3994원), 남양주·구리는 2115억(1인당 28만488원), 전주·완주는 4798억이 통합효과가 발생한다.  

 

도·농 통합으로 본 통합효과는


 ‘한 지붕 두 가족’ 우려보다 통합 시너지 효과 더 클 터

시도별 인구분포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1년 이후 시·군 통합은 지금까지 4차례 추진됐다. 1994년 8월에는 경기 남양주시, 강원 춘천·원주·강릉·삼척시, 충북 충주·제천시, 충남 공주·보령·아산·서산시, 전북 군산·정읍·김제·남원시, 전남 순천·나주시, 경북 포항·경주·김천·안동·구미·영주·영천·상주·문경·경산시, 경남 창원·마산·진주·통영·밀양·거제시 등 33곳이 통합됐고 같은 해 12월에는 전남 광양시가 통합됐다. 1995년 5월에는 경기 평택시, 충남 천안시, 전북 익산시, 경남 사천·김해시 등 5곳이 통합시가 됐다. 1997년에는 전남 여수시가 통합됐다.

이때는 현재 논의되는 시·군 통합과 달리 도시와 농촌지역을 하나로 묶는 ‘도·농 통합’의 형태로 81개 시·군이 40개의 시로 조정됐다. 이들 지역은 당초 단일 행정구역이었으나 산업화·도시화 등으로 인구가 늘어 1980년대에 나뉘었다. 당시 기준은 ‘1개의 도시화된 읍(邑)이 있고 인구가 5만이 넘거나, 2개의 읍에 인구 7만이 넘을 때’ 시로 승격했다. 하지만 경제활동 권역이 겹치는데도 다른 행정구역인 탓에 불편이 많았고 주민서비스의 질도 낮아졌다는 지적을 받아 1990년대 들어 다시 합했다.

행정안전부는 통합의 효과가 크다는 입장이다. 우선 행정구역이 주민들의 생활권·경제권·교통권 등과 일치돼 지역주민의 불편이 해소됐다는 점이다. 또 통합 시의 세출예산 중 인건비 비중이 8.5%p 낮아졌을 뿐 아니라 조직개편 결과 행정효율이 높아지는 등 시너지(Synergy)가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백석대학교 박종관 교수가 2008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버스/택시서비스를 제외한 나머지 5개 항목에서 모두 ‘다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사항목은 경찰/소방서비스, 교육여건, 대중교통, 교통시설, 상하수도, 버스/택시, 문화시설 등이며 경찰/소방서비스가 5점을 기준으로 3.50점으로 가장 높았고 교통시설(3.42), 문화시설(3.39), 상하수도(3.37) 등의 순이다. 박 교수는 “응답자의 49.7%는 도·농 통합이 지역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했다고 답했지만 부정적 판단은 19.7%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통합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통합 전인 1993년 8월 5만1375명이던 공무원이 2008년 12월 4만7785명으로 줄었고, 인건비 비중도 통합 후 8.5%p 감소했다. 조사대상인 30개 도·농 통합시의 경우 국(局)은 1994년 60개에서 2008년 106개로 늘었지만 과(課)는 1022개에서 640개로 줄었다. 또 통합 후 10년간 농촌지역에 소각장이나 화장장 등 비선호시설이 78개 설치된 데 반해 도시지역에는 83개가 설치돼 시·군이 통합되면 농촌지역에 비선호시설이 집중될 것이라던 당초의 우려도 기우(杞憂)임이 입증됐다.

농촌지역의 상대적으로 높은 인구성장률도 통합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측면이다. 통합시의 인구성장률은 통합이후 7.3%p(-3.1%→4.3%) 증가했다. 그러나 통합대상이었지만 실패한 청주시·청원군 등은 2.8%p 증가에 그쳤고, 중심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군이 없는 시는 -6.6%p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