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시아의 뉴욕을 꿈꾸다
서울, 아시아의 뉴욕을 꿈꾸다
  • 문명혜 기자
  • 승인 2009.10.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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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화 고속도로 건설현장을 가다

서울시의 컬처노믹스 질주가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다.
민선4기 4년 여정의 피니시 라인이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서울시정사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족적을 남기기 위해 스프린터의 라스트 스퍼트를 내고 있는 것이다.
컬처노믹스는 서울시를 넘어 대한민국 건국 61년 전역사를 눈 씻고 찾아봐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새지평이다. 문화가 도시발전의 핵심전략이었던 적은 없었다.
서울시는 지금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인 문화예술 창작공간을 늘리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으며, 본지는 전 호에서 예고한대로 컬처노믹스 핵심사업인 ‘문화인프라 확충’의 단면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 한다.                           -편집자주- 


컬처노믹스 선언 이후 서울시에 창작공간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컬처노믹스 이전에 불과 3곳이던 창작공간은 금년들어서만 벌써 4곳이 늘어났고, 연말까지 2곳이 더 문을 열게 되며, 내년에도 3곳을 더 늘려 민선4기에만 총 12곳의 창작공간으로 늘어나게 된다.
문화도시로 가는 가장 시급한 사업이 문화 인프라 확충이고, 그중에서도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 확보가 필수적 과제라는 게 서울시가 창작공간을 늘리는 이유다. 서울시 곳곳에 속속 문을 연 창작공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BAM’ 추격 전초기지
남산예술센터

남산예술센터 전경
2008년초 신년사에서 오세훈 시장이 컬처노믹스 원년을 선언한 후 1년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금년 6월8일 시민들에게 내놓은 첫 창작공간은 ‘남산예술센터’였다.
컬처노믹스 선언 후 ‘첫번째’라는 중압감 때문에 강한 상징성이 필요했던 서울시가 선택한 곳이 바로 한 때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였던 드라마센터였다.

 

서울시는 세월의 부침 속에 ‘메카’의 영예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이곳에 현대건축의 조형미를 갖춘 제작중심의 연극공연장을 새롭게 지어냈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예술 연출가들의 예술혼과 드라마를 사랑하는 관객, 배우들이 호흡을 같이 할 48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갖췄는데 고대 희랍의 계단식 원형극장을 연상케 한다.

남산예술센터의 빛나는 면모는 교육프로그램이다. ‘마에’급 무대예술가들이 직접 미래의 문화전사들을 가르치는 예술교육관과 시민들과 노년층을 위해 연극·미술·뮤지컬·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학습관도 운영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세계적 전위 예술극장인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 대한민국 연극계의 옛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문화기획의 요람
서교예술실험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 전경
남산예술센터가 개관된지 2주일도 안된 6월19일 대한민국 인디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홍대 앞에 ‘서교예술실험센터’가 문을 열었다.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려 통합돼, 비어 있는 서교동주민센터를 홍대 앞 문화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곳이 서교예술실험센터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는 현재 5개의 문화기획팀이 입주해 활동하고 있는데 연말까지 인디밴드 제작 노하우, 크리에이티브 아트 등 활발한 자체 기획전을 펼치게 된다.

 

특히 기획팀 중 하나인 ‘문화로 놀이짱’은 ‘옥상공방’ 기획전을 펼치고 있는데 센터 옥상공간을 활용해 실용예술분야인 목공예를 시민들이 직접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센터가 자리잡은 지역은 상권이 발달한 곳으로 서울시가 이곳에 창작공간을 조성한 것은 문화가 상업에 매몰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다.
나날이 행정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유휴청사를 창작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내놓은 것은 ‘문화’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문화·산업 연계 고부가 창출
금천예술공장

금천예술공장 창고동 지붕에 설치된 '아트로봇'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갈 무렵인 지난 10월7일 키가 7m쯤 될법한 ‘아트로봇’의 위용을 앞세운 ‘금천예술공장’이 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중소기업이 밀접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산업과 예술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도시재생을 목표로 문을 연 금천예술공장은 입주작가들의 스튜디오와 다목적 공연장, 국제예술가를 위한 호스텔 등이 조성돼 있다.
금천예술공장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국제레지던시’를 표방한 것으로 국내외 예술가들이 장기간 잠자리를 함께 하면서 교류 폭을 ‘죽마고우’ 급으로 늘리는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금천예술공장은 국내외 예술가들이 교류하고, 산업과 예술을 연계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활성화 모델이다.

기존의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한 금천예술공장은 ‘문화공동체’의 이상도 꿈꾸고 있다. ‘시민아뜰리에’를 운영하는데 지역주민들과 자녀들을 예술공연장으로 불러 모으는 한편 시각예술 체험관으로 초청해 ‘주말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 턱’ 없앤 실용예술 집적
신당창작아케이드

신당창작아케이드(지하) 입주작가 작업모습
현재 시점에서 가장 최근에 개관한 창작공간은 ‘신당창작아케이드’로 지난 16일 문을 열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자리는 한 때 서울을 대표하는 3대 재래시장의 명성을 자랑하던 곳이었는데 ‘십일 붉은 꽃 없다’는 금언처럼 100개의 점포 중 반이상이 빌 정도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뜸해지던 차에 문화창작공간으로의 변화를 맞게 됐다.

 

서울시는 40실의 스튜디오를 꾸미고 섬유·종이·금속·도자·목공예·판화·북아트·사진 등 다양한 실용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내준 후 시장과 예술의 만남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접근성’이다. 창작공간과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 있어 시민입장에선 굳이 ‘차려입고’ 나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공예전문 창작공방이라는 신당창작아케이드의 특성을 살려 예술작품의 상품화 등 지역산업과 연계를 희망하고 있으며 특히 패션중심지인 동대문지역과의 제휴가 가져다 줄 파급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문화에 ‘겨울’은 없다
연희문학창작촌, 문래예술공장

11월5일 또다른 창작공간이 연희동에서 개관되는데 이번엔 ‘문학’이다.
연희동 옛 시사편찬위원회 자리에 새롭게 들어서는 ‘연희문학창작촌’은 도심속 전원형 문학창작촌을 표방하며 4개동으로 지어지는데 국내 문인들을 위한 입주 집필실과 해외 문인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산책로 등으로 꾸며질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대중화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서울시는 연희문학창작촌에도 시민들을 위한 강좌공간을 꾸며 놓았고,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아마도 첫눈이 내릴 즈음이면 서울시민들은 철거 될 운명이었던 철재공장이 예술공장으로 재탄생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작년 12월에 착공한 ‘문래예술공장’이 1년의 정성 끝에 올 12월 마침내 대문을 활짝 열게 된다.
300평 대지위에 4층 높이의 문래예술공장은 1층에 대형 크레인이 설치된 작업실과 전시공간이 들어서고, 2층엔 다목적 발표장이, 3층엔 카페형 갤러리, 4층엔 입주작가들의 게스트 하우스가 조성된다.
문래동은 철재상가 밀집지역으로 낡은 건물은 불문곡직 때려 부수고 번듯한 신축건물을 짓는 기존의 개발방식에서 탈피해 현지의 역사성을 반영하는 문화시설을 지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을 도입한 서울시가 금년 말에 어떤 창작공간을 내놓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민선4기 대미 장식
내년에도 3곳 개관

서울시는 내년에도 ‘중단없이’ 창작공간 확충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3월에 ‘성북예술창작센터’가 문을 열게 되고, 민선4기 막바지인 6월에 ‘홍은예술창작센터’와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성북보건소가 떠난 자리를 시민창작 중심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 하는데 유아예술놀이방, 주민아뜰리에, 창작스튜디오, 다목적 발표공간이 들어서고 옥상엔 정원과 공방도 조성할 예정이다.

민선4기 대장정의 마지막 상징물 중 하나로 기록될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서부도로교통사업소가 이전하는 자리를 친환경생태예술 창작공간이 대체하는데 예술놀이방, 재활용 아트샵과 스튜디오 등이 꾸며진다.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역시 관공서인 은천동주민센터를 비운 자리에 조성되는데 어린이를 위한 예술창작공간으로 개관되는 점이 이채롭다.
민선4기의 창작공간 확충사업이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읽힌다.
文明惠 기자 / myong5114@sijung.co.kr


출입기자가 본 창작공간 의미

 ‘글로벌 문화1번지’ 터닦기

서울시가 큰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다. 토목공사명은 ‘문화 고속도로’ 건설이고, 포성없는 문화전쟁 시대에 승자가 되기 위해 ‘중무장’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연간 4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뉴욕은 공연예술로 해마다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세계문화 1번지로 전세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동안 멀리서 한 없이 부러워만 하던 서울시가 “머지않아 따라잡겠다”는 일성을 지르고 힘찬 발걸음을 뗐다. 민선4기 출범 1년 반 만의 일이다.
35년여의 피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부지런한 시민들이 일궈낸 ‘한강의 기적’은 외국인들에겐 경이였고, 한국인들에겐 자부심이었지만 12년전 대한민국은 큰 고비를 겪었다.
서방 7개국과 금새 어깨를 견줄 것처럼 보이더니 IMF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빚쟁이로 전락해 버렸고, 그 여파였는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등도시 서울 역시 10년 동안이나 성장을 멈추고야 말았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던 서울시가 찾아낸 해법이 ‘컬처노믹스’로 이름붙인 문화를 통한 발전전략이었는데 불과 1년 10개월 전 일이다.

컬처노믹스로 세계 10대 일류도시로 하루빨리 진입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번듯한 도시를 만들려면 우선 길을 닦아야 하듯 문화도시의 명성으로 고부가가치를 얻으려면 먼저 문화인프라를 갖출 수밖에 없고, 서울시가 현재 벌이고 있는 창작공간 확충사업은 문화인프라 구축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세계적 문화도시가 되려면 다수의 실력있는 예술가들이 배출돼야 하고 그에 앞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다듬을 수 있는 창작공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서울시가 현재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심혈을 쏟고 있는 창작공간 확충사업은 문화인프라 구축의 최우선 사업으로 단순히 창작공간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창작인에 대한 지원 성격이 더욱 강하다.

거의 무상으로 임대되는 창작공간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예술인들에게 ‘단비’와 같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창작공간이 마음껏 밤을 지샐 수 있는 ‘거주기능’을 포함시킨 것을 보면 ‘생색내기’ 차원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을 알 수 있다.
슈베르트의 수많은 명곡들이 심야시간 구석진 방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어두운 밤에 집중력이 높아지고 영감을 얻는 예술가들의 습성을 놓치지 않은 서울시의 ‘원려’가 느껴진다.

창작공간의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점인데, 예술인들과 시민들의 거리가 좁을 수록 문화예술의 이해가 커지고 훗날 문화시장의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꼽힌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1997년부터 10년간 소설, 영화, DVD로 308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는데 같은 기간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총액이 231조원 이었음을 감안해 보면 문화산업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울시의 창작공간 확충사업은 제2의 조앤 롤링을 키워 낼 토대이며, 곧 만개할 문화시대를 준비하는 터 닦기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