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통합, 중앙 입맛대로?
시·군 통합, 중앙 입맛대로?
  • 방용식 기자
  • 승인 2009.11.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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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鏞植 기자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딱하게 됐다. 이틀 만에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식언(食言)꾼이 됐기 때문이다. 이달곤 장관은 지난 10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갖고 주민의견조사 결과 6개 지역에서 통합을 찬성하는 비율이 50%를 넘었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통합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식구라 할 수 있는 안상수 의원이 선거구 조정의 문제가 있다며 통합대상인 안양·군포·의왕을 걸고 들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안 의원은 지역구가 과천·의왕이다. 이달곤 장관은 이런 지적에 자신이 불과 이틀 전에 발표한 통합대상 6개 지역에서 진주·산청, 안양·군포·의왕은 제외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말에 이들 지역에서는 반발이 잇따랐고, 이 장관은 졸지에 졸속과 무능행정의 진원이 됐다. 안양·군포·의왕 자율통합대상제외 3개시 비상대책위원회는 “국정이 무슨 어린애 장난인가, 주민여론조사가 ‘참고용’이라니 무슨 궤변이냐”며 꼬집고 “이달곤 장관은 즉시 사과하고, 자신 사퇴하라”고 공격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이달곤 장관은 지난 2월말 취임 이래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이 장관은 정치학자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경륜과 정치적 역량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됐다. 임명이유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 기치를 올렸던 지방행정체제 개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장관이 이런 역할에 일정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는 그런 희망과는 등을 지고 반대방향으로 떠날 듯 보인다. 사실 시·군 통합과 관련, 제대로 될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주민의견조사를 단순히 ‘참고용’으로 못 박고, 주민투표 부의권한이 행정안전부장관에 있다며 법조문을 액면그대로 적용하려는 생각도 그중 하나이다.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주민의견을 ‘법에 없다’며 경시하고, 오로지 행정구역개편은 중앙정부와 여의도의 결심에 달렸다며 강변하는 것은 중앙의 입맛에 맞춰 행정구역개편을 시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통합을 원하는 성남·하남·광주는 ‘지나친 비대화’를 이유로 통합을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의견이 49.8%인 청원군을 청주시와 통합하려는 의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서울의 한 자치구 5급 공무원은 “통합에 앞서 해당 시·군·구 공공부문의 불필요한 부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주민에게 홍보하는 게 선결조건이다”고 행정안전부를 비판했다. 이번 논란은 행정구역 통합을 통해 국가와 지방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국정수행능력이 공무원 개인만도 못함을 보였다는데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