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論이 바로 서려면
공정사회論이 바로 서려면
  • 시정일보
  • 승인 2010.10.0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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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기획취재국장

현재 우리나라는 구호물자를 받던 적빈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한 세계 유일의 모델이다. 35년에 걸친 식민지배에서 헤어난 뒤 3년 전쟁을 치렀고, 그 폐허 위에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올해는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으로서 세계 주요국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안팎에서 분열과 자해가 선진국으로 가는 진입로에서 장해물이 되고 있다. 각계 지도층도 사회갈등과 이념대립을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발전을 스스로 저해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법률 종교 등 모든 분야에 이념의 너울이 덧씌워져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9.6%가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선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는 비율이 73%나 됐다. ‘중소기업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대기업 때문’이란 주장에 73.5%가 동의한다고 했다. 만일 ‘세금 내는 사람 노조’ ‘재판 받는 사람 노조’ ‘형편 어려운 사람 노조’ 같은 게 있었더라면 ‘혁명전야로군…’하는 반응을 불러올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 ‘공정한 경쟁’ ‘공정한 공동체 건설’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외교부의 특채파동과 지방자치단체들의 특채 실례는 이 나라가 ‘특별국민’과 ‘보통국민’으로 분단된 사회라고 화나게도 만들었다. 국민의 70%가 우리 사회를 불공정 사회라고 대답하는 혁명적 분위기가 조성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데 유식한 채 지니(Gini)계수를 들먹이며 한국사회가 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만큼 고르지는 못하지만 미국?영국?일본보다는 낫다고 내세우는 것은 미련하고 눈치 없는 짓이다.
국민들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한 사회라고 지적하면서 ‘약자에 대힌 배려가 없기 때문’ (15.8%) 보다는 ‘엄정하고 투명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28.1%)이라는 이유를 더 앞세우고 있다. 규칙이 무너진 사회에 대한 이반심리다.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통일로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작동하는 공정한 사회라는 다리를 반드시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을 닦는데 돈이 그리 안 드는 분야도 있다. 법이 강자에겐 칼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하다가 약자에겐 한 맺힌 매듭을 만들고 마는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이 그런 예다. 그러나 정치의 약속은 대부분 돈이 든다. 이제 국민은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친서민 공정정책의 홍수 앞에서 꿈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실현할 돈은 어떻게 장만 하냐 하는 걱정을 먼저 해야 할 판이다. 정치인과 관료의 업무는 대부분이 공익을 명분으로 ‘남의 돈’을 쓰는 일과 관련돼 있다. 현대 복지국가의 최대 과제는 어떻게 하면 정치인과 관료들이 ‘남의 돈’으로 여기는 예산을 ‘내 돈’만큼, 그게 안 되면 ‘우리 돈’ 정도로라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감시하느냐다. ‘공정’이라는 화두를 놓고 여야가 겨루는 모처럼의 정치다운 정치가 ‘공정한 규칙’을 가다듬을 때다. 사람은 법의 거울에 자신의 행동을 비춰보며 두려워하고, 도덕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정치인이나 관료는 이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교묘하게 섞어가며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법의 거울밖에 없는 사회는 부끄러움을 잃게 되고 도덕의 거울로만 지탱하는 사회엔 두려움이 사라진다. 결과는 다 같이 혼란과 무질서다. 그래서 공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