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오늘의 역사/ [1907년] 이준 열사 분사(憤死)
7월 14일 오늘의 역사/ [1907년] 이준 열사 분사(憤死)
  • 시정일보
  • 승인 2011.07.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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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조국의 품 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이준 열사가 묻혀 있던 헤이그 묘지.

[시정일보]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22일이었다. 이상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위종이 페테르부르크에서 합류해 6월25일 목적지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의장에게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하며 대회 참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패한 의장국 러시아는 면담조차 꺼렸고, 영·일동맹의 두 당사자인 일본과 영국은 훼방을 놓았다. 세 특사는 할 수 없이 각국 대표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신문을 통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려 했다.

하지만 열강 대표들이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준 열사는 통분을 참지 못하고 분사(憤死)한다. 7월14일이었다. 자결설·병사설·단식순절설 등 사인(死因)을 놓고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헤이그에 묻혔던 시신은 1963년에 서울 수유리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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