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독재자
  • 방용식
  • 승인 2011.12.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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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보면 ‘상왈(上曰)’ 또는 ‘교왈(敎曰)’, ‘전왈(傳曰) 등의 내용이 어김없이 나온다. 이 말은 모두 ‘임금이 말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들 기록에서 신하는 ‘왈’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임금의 통치행위 등에 대한 기록인 탓에 오직 임금만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말할 수 있음은 임금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었다.

굳이 임금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잠깐 생각해보면 ‘말’은 권력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어렸을 적 밥상머리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가족이 둘러 앉아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얘기했고 아이-나이가 적거나 권력이 낮은 사람-들은 듣는 쪽이었다. 어른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나, 그것도 머리를 숙이며 눈을 쳐들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권력이었다. 물론 요즘에야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젊거나 나이 적은 사람들도 고개 빳빳이 들고 말할 수 있다. 소통이 강조되는 요즘에는 윗사람이 오히려 대화를 강조한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Dictator)의 어원은 ‘말하다’는 의미의 ‘Dic’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는 받아쓰기를 할 때 교사가 “Dictate”라고 한다. 말할 테니 받아쓰라는 것이다. 또 말하는 법, 즉 어법은 Dictation이며 말글을 담아 놓은 책인 사전이 영어로 Dictionary인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법을 초월하며 전권을 휘두르는 독재자는 바로 Dictator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나 로마공화정에서 시민들은 모두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독재자가 없었다는 얘기다. 독재자와 엇비슷한 모습의 참주가 출현할 때는 어김없이 그를 쫓아냈다. 아테네의 도편추방(페이시스트라토스)이 대표적이다. 고대 로마공화정(B.C.510~27)은 전쟁 등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 임시집정관을 뽑았다. 임시집정관이 바로 독재자(Dictator)이었다. 독재자는 원로원의 의견과 관계없이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시집정관도 기존의 법률이나 정치체계를 폐지할 수 없었고, 임시직인데다 6개월을 넘지 못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었다. 이집트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등 세계의 독재자 6명도 금년에 죽었다. 신의 시계는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