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서 무너지는 부모-자식의 정
돈 앞에서 무너지는 부모-자식의 정
  • 시정일보
  • 승인 2004.12.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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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련희(연길시 인민방송국기자)
대한민국의 원대한 포부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만방에 펼쳐져 있다. 특히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동포들의 생활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본지는 국제자매결연지인 중국 장춘시 ‘길림신문사’가 공모한 ‘조선족 생활수기’중 우수작을 발췌하여 연재한다.




B의 경우:
서른살에 나는 김옥이는 여섯살 밖에 안되는 자식을 시부모님께 맡기고 미국 사이판으로 로무송출을 떠났다.
김옥이는 신염병으로 팅팅 붓기면서도 그냥 재봉침에 앉아 일했다. 일욕심이 많은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500원이라도 더 벌어야 직성이 풀리는 녀자였다. 화장한번 정히 할새도 없이 그녀는 일만 끝나면 자고 깨여나면 다시 일하면서 2년동안 이악스레 일했다. 남편이 외지에서 사업하기에 김옥은 시아버지앞으로 돈을 부쳐보내군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고 보니 애가 앓을 때 쓴 1만여원 돈만 령수증이 있을뿐 나머지 10여만원은 그저 다 썼다고만 하는것이였다. 김옥이가 아무리 사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쟁론했지만 시부모님들은 그저 다 썼다는 말만 곱씹는 것이였다. 별수없이 김옥은 남편을 불러왔다.
“아버지. 내가 번 돈도 아니고 며느리가 번 돈인데 제발 돈을 주세요.”
아들이 꿇어앉아 애걸했지만 부모들의 태도는 끄덕도 없었다. 집에 늘어난 재산도 없고 누구한테 꿔주지고 않았다는데 로인들이 어떻게 10여만원을 다 썼다는 걸가? 아들은 설복하고 사정해도 쓸데 없자 엄포를 놓았다.
“아버지가 정 이러시면 난 부자관계를 끊겠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제꺽 대답했다.
“너를 25년이나 키웠고 네 자식을 2년이나 키워주었는데 10만원을 쓴게 그리 내키지 않는거니? 부자관계를 끊겠다면 우리도 별수 없다.” “어머니가 나를 키워준건 키워준거고 며느리가 번 돈은 내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퇴직금도 있고 한데 모자라면 자식들과 달라 해야지 어떻게 자식의 돈을 이렇게 뭉텅 잘라 먹을수 있습니까?”
“너희들은 젊으니깐 앞으로 또 벌수 있지만 우린.....”시아버지의 말이였다.
김옥이는 시아버지한테서 겨우 1만원만 받아가지고 나왔다. 그녀는 더는 시부모가 계시는 곳에 있기 싫어 남편이 사업하는 곳으로 이사했다. 자식 여섯남매를 키우면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면서도 자식들에게 원망 한마디 없던 부모님들이 돈과 자식을 놓고 돈을 선택했으니 참 알다가고 모를 것이 돈인가 싶다.
사회가 격변하면서 인간들 사이의 정은 차츰 메말라가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에 비애를 느끼고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서 혈육과 친척의 정만은 제발 메마르지 말기를 소원하고 있다. 하다면 돈앞에서 혈육의 정마저 사라져가는 현실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가?



c의 경우:

최선생의 안해는 일본에 갔다가 2년만에 돌아왔다. 최선생은 안해가 돌아온 이튿날로 안해를 이끌고 택시를 잡아탔다.
“당신 어디로 날 데리고 가는거예요?”
“아무 말 말고 따라 오오.”
택시는 비둘기다방 앞에 멈춰섰다.
최선생은 다방에 들어서자 안해의 이름으로 된 가옥소유증을 내보였다. 다방은 100여평방메터가 좀 넘었는데 장식이 새롭고 위치도 좋았다. “이 다방 우리꺼예요?”
“그럼.” “그럼 이 다방 한달에 얼마씩 받고 세줘요?” “한달에 2300원이요.”
최선생은 복무원에게 부탁하여 뜨거운 커피 두잔을 청해놓고 수첩 한권을 안해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돈장부요. 당신이 잘 보오.”
안해는 남편이 주는 수첩을 펼쳐들었다.
앞장에는 안해가 보내온 일본돈 액수와 날자 그리고 인민페 환률이 적혀있었고 뒤장에는 집값 23만원, 장식비 5만원, 처남이 대학에 갈 때 학비에 보태라고 준 돈 1만원, 아버님이 입원했을 때 쓴 돈 5000원, 아이의 인신보험비 등 큰 액수의 돈 지출이 적혀있었다.
“이 5만원 저금통장까지 합치면 한 1만1000원이 차나는데 그건 내가 생활비에 보태쓴거요.”
최선생의 말을 듣고 안해는 무척 놀라는 얼굴이였다. “당신 씀씀이가 아주 헤픈 사람이였는데 어떻게 이렇듯 꼼꼼하게 챙길수 있었어요?!”
“당신이 말했잖소. 보내온 돈을 내가 헛되이 썼다가는 이 집이 박산날거라구.”
안해는 키드득 웃어버렸다. “여하튼 고마웠어요. 내 믿음이 빗나가지 않았군요. 내가 갖고온 돈이 좀 있으니 합쳐서 우리가 사는 집 한채 개변해보지 않겠어요?” 최선생은 정색하더니 아무 말도 없었다. 안해가 말했다. “내가 일본에서 그동안 고생했는데 좋은 집에서 호강하는게 그리도 내키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구. 당신 원래 가만있지 않는 성격이잖소. 물론 다방에서 나오는 세값으로 살수는 있겠지만 어느날 문득 당신이 또 일본으로 가면 난 다시는 집을 지킬 신심이 없소.” “당신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요. 당신이 아니였더면 내가 아무리 많이 번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 다신 일본에 가지 않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슈퍼마켓 하나 차려 잘 꾸릴게요.” 그래도 이런 인정이 남아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할가. 돈 때문에 인간의 정이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혈육의 정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는 것도 오늘의 현실이다. 어쩌면 인간은 이렇게 고약하게 변한것일가? 정말 돈앞에서 인간은 이렇듯 왜소한 존재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