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가면
  • 방용식
  • 승인 2012.02.23 14:29
  • 댓글 0

[시정일보]“서라벌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런만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걸 어찌하릿고.”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處容郞望海寺)’ 편에 전하는 글이다.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은 미녀 아내를 얻고 신라에 정착했다. 하루는 처용이 밤늦게 와보니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처용은 위와 같은 내용의 를 부르며 물러났고,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은 처용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이후 사람들이 처용의 얼굴을 붙여 놓고 사귀(邪鬼)를 쫓았고, 처용의 탈을 쓰며 춤을 췄다고 한다.

처용무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탈춤이 많다. 탈춤은 본래 황해도 봉산·은율 등의 탈놀음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중부와 영남지방의 산대놀이, 오광대, 들놀음, 별신굿놀이 등을 통칭한다. 현재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동래들놀음,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하회별신굿탈놀이, 동해안별신굿, 북청사자놀이, 제주입춘굿, 남사당덧뵈기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1960년대 이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가면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베네치아는 섬 118개를 연결한 도시-1797년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베네치아는 엄연한 독립된 공화국-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2월경 가면축제가 열린다. 가면축제의 유명세 때문인지 베네치아 골목에는 가면가게가 곳곳에 있다. 몇 만 원짜리에서 예술품 같은 가면까지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가면은 사순절 2주를 앞둔, 2월경부터 축제참가자들이 이용한다. 금년 축제는 2월4일에 열려 21일 끝났다.

가면은 자기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용한다. 처용의 탈은 역신을 속이기 위해 사용되고, 산대놀음에서는 탈을 쓰고 양반을 조롱하고 놀린다. 서양영화에서는 가면무도회가 곧잘 나온다. 여기서도 가면으로 자신을 숨긴 채 다른 사람과 춤을 추곤 한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가면은 어쩌면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샐러리맨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나 후배에게 겉으로는 웃는다.

가면의 대가는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인들이다. 그 부류 사람들은 선거 때만 되면 겹겹이 가면을 쓴다. 여기서 기웃, 저기서도 기웃댄다. 종교도 철학도 없다. 표 앞에서는 신념도 저버리곤 한다. 40일 여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어김없이 가면놀이를 봐야 할 듯하다. 이제는 국민이 처용의 탈을 쓰고 벽사를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