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와 富
공직자와 富
  • 방용식
  • 승인 2012.03.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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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며칠 전 고위공직자 1844명의 재산공개현황에 따르면 공개대상 공직자 62.2%가 전년보다 재산이 늘었다. 액수는 1000만원에서 5000만원이 22.7%로 가장 많았고 1억에서 5억 미만이 16.1%, 5000만원에서 1억 미만이 15.6% 등이었다. 증가액수가 평균 200만원으로 많지 않고, 그 사유도 부동산 가액 상승과 급여저축이라 문제를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기불황 속에서도 고위공직자는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계층임이 입증된 터라 국민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기주소(禮記注疎)’ 대학 편에서 맹헌자(孟獻子)는 ‘마승(馬乘; 4마리 말이 끄는 수레)을 기르는 대부(大夫)는 닭이나 돼지를 기르지 않고, 상제(喪祭)에 얼음을 쓰는 경대부(卿大夫)는 소나 양을 기르지 않고, 백승(百乘)의 가문(전쟁 때 100대의 전차를 동원할 수 있는 집안)은 부당한 세금 걷는 신하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한다. 또 ‘한서(漢書)’에는 노(魯)나라 무공(繆公)때 재상 공의자(公儀子)가 식탁에 아욱이 오른 것을 보고 마당의 아욱을 뽑아버리며 ‘내가 국록을 먹는데 어찌 농부의 이익을 빼았는가’라며 꾸짖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남의 나라 공직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영조 때 호조의 서리였던 중인(中人) 김수팽이 선혜청의 서리로 있는 아우의 집에 갔더니 제수가 염색을 하는 것을 보고, 동생을 매질하며 “우리 형제가 다 후한 녹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일을 한다면 저 빈자(貧者)들은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냐”며 염색항아리를 엎어버렸다는 얘기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등에 전한다.

과거에도 물론 탐학(貪虐)하는 관리는 있었고, 현재도 축재를 거부하고 맡은 자리에 충실한 청백리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관리로서 부(富)를 탐낼 경우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됐고, 나아가서는 탄핵을 받기도 했다. 반면 물신(物神)적 풍조로 자본이 최고의 가치가 된 요즘에는 청백리는 자랑거리가 아닌 ‘창피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공자는 ‘부귀는 사람이 원하는 바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는 것이라면 몸(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고 했다.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은 환공(桓公)의 ‘부유함에 한계가 있느냐’는 물음에 “사람은 스스로 만족스러움을 그칠 수가 없고, 부유함의 한계를 잃어버릴 수가 있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