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믿고 싶은 것’ 보다 ‘믿음을 주는’ 정책
시정칼럼 /‘믿고 싶은 것’ 보다 ‘믿음을 주는’ 정책
  • 시정일보
  • 승인 2012.07.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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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기획/취재국장

 

[시정일보]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들이 ‘경제민주화 민생경제’를 모토로 삼고 열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믿음이 실리지 않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실제 유럽 위기가 그 많은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신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는 주어진 여건 하에서 그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있다는 것과 그 정책이 추진됐을 때 그것이 의도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합쳐질 때 생기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순환적 또는 일관성 요인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이나 제도적 문제의 결과라는 것을 시장은 알고 있다.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이 어렵고 그것이 큰 고통의 수반을 요구할 때 ‘믿고 싶은 것’에 기대 보려한다. 이럴 때 누군가가 고통 없이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나 ‘이번은 다르다’며 새로운 이론을 내세워 현상 유지의 구실을 주면 대중은 쉽게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 그 결과는 희망의 실현이 아니라 파국의 도래로 끝난다. 어느 나라건 어떤 시대건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을 주는’ 정책을 택하고 ‘믿고 싶은’ 유혹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의 대상이 되는 대중이나 정책을 약속하고 채택하는 정책 당국 모두에 있어 그렇다는 점이다.

알지도 못하는 신종 금융상품들이 쏟아지고 저금리로 신용과 부채가 팽창해도 이를 금융시장의 효율성 덕분이라 믿고 싶어했다. 또 만약 거품이 터지면 통화정책으로 이를 쉽게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했다. 결국 거품과 시장은 붕괴됐고 그러한 희망은 거품이 돼버렸다.

지금 우리는 무상보육, 보편적 복지, 반값등록금을 확대해도 국가의 재정건전성은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무상보육문제로 재정이 바닥나고 있어도 어떻게 될 거라는 믿음에 기대본다. 가계부채가 가처분 소득의 약 150%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도 이것이 충분히 관리가능하고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여기저기 끝없이 파헤치고 개발·정비하는 비용을 예산이 아니라 공기업의 빚으로 떠넘기며 앞으로 이들 공기업이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대책은 실종되고 바람만 있을 뿐이다.

본격적인 대선 계절이 시작됐다. 각 진영은 국민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들을 경쟁적으로 제조해 내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이 ‘믿음을 주는’ 경쟁이 아니고 ‘믿고 싶은 것’의 경쟁이 되면 우리는 다시 5년을 뒷걸음질과 실망으로 보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경제 문제는 장기적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계부채, 부동산, 비정규직, 소득분배, 중소기업 경쟁력, 공정경쟁기반, 일자리 창출 등은 오랜 기간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과제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수년간 어둡다고 전망한다. 다음 정권은 이번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계금융위기를 이유로 오히려 더 키워온 과제들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음 정권을 맡을 사람은 새로운 핑크빛 목표를 제시하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부실을 처리하며, 위기를 관리하고, 경제의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들에 더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으로 유혹하는 정당과 대선후보를 가려내는 것이 이번 대선의 중요 관전 포인트다.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움을 헤쳐가자고 하면 전자일 확률이 높다. 모호하고 근사한 구호로 임기 중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면 후자일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아픔을 나누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