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올 가을,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단체장칼럼/올 가을,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 시정일보
  • 승인 2012.10.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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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희 송파구청장

[시정일보]독서결핍증이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중 4명은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여가의 수단이 다양해진 요즘, 현대인들이 독서에 소홀해지는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검색만 있고 사색(思索)이 없는 시대’라는 자성의 목소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이런 독서결핍증을 실제 의학적인 질병(疾病)으로 보는 나라가 있다. 북유럽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다. 핀란드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을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돕는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핀란드 전역엔 1000개가 넘는 공공도서관과 도서관 분원, 이동도서관 등이 마치 병원처럼 촘촘히 국토를 메우고 있다. 핀란드의 인구가 550만명 정도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치다. 또한 학교와 지역 도서관의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학교수업에 필요한 책과 자료를 순환 대출하는 시스템도 완벽히 갖추고 있다.

범국가적인 독서진흥 정책의 결과로 핀란드는 인구 1인당 도서관 비율과 도서관 이용률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인프라뿐만이 아니다. 핀란드 사람들의 80%는 정기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고, 77%는 하루 평균 1시간씩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연구(PISA)에서도 핀란드는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자일리톨, 노키아에서부터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온 게임 앵그리버드까지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이 작은 나라에서 줄줄이 나오고 있는 것도 어쩌면 독서를 통해 얻은 창의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핀란드인들 스스로도 각 분야에 있어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강한 독서 문화라는데 동의한다.

이처럼 독서에서 비롯된 지식 자본은 미래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격 함양에 있어서도 책이 줄 수 있는 정서적 풍요로움은 여타 물질문명의 이기(利器)와는 견줄 바가 못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행((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이라고 했다. 우리 주민들에게 책 읽는 향기가 가득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책 읽는 송파’사업이다.

먼저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했다. 버스정류장 앞의 두 줄 책장과 석촌호수 내 공원속의 책장, 성내천 피서지문고처럼 주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EBS, 숭실대와 연계하여 ‘책 읽는 택시’라는 이색사업도 시작했다. 택시 안에서 대중음악이나 연예인의 신변잡기 대신 ‘EBS 책 읽는 라디오’를 틀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는데, 활성화되면 지역 내 모든 택시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기대해봄직하다.

직원들도 책 읽는 송파 만들기에 적극적이다. 송파구청 창의동아리 두루누리는 지역 도서관의 보유 서적을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주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독서릴레이도 진행 중인데, 선정도서 읽기를 통해 직원과 주민간의 의견을 나누며 공감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편지글 중 일부다. 다산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두 아들이 책읽기를 게을리 할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비단 다산 선생뿐 아니라 옛 사대부들은 자손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가을의 정취와 함께 책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계절이다. 올 가을에는 우리 선현들이 그러했듯 자녀에게 책을 선물하고, 독서하는 습관을 물려줘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