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 ‘기능직’ 사라져…‘숨어 있는 차별’ 해소가 관건
올 12월 ‘기능직’ 사라져…‘숨어 있는 차별’ 해소가 관건
  • 방용식
  • 승인 2013.01.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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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사무 기능직, 일반직 전환

서울의 한 동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J씨는 지난해 9월 ‘기능직’ 딱지를 뗐다. 근 20년간 업무를 보면서 그동안 누구 못잖게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전산 관련 업무는 구청에서 제일이라는 평가도 얻었다. 그러나 기능직이었던 J씨는 일반직 직원들처럼 직접 기안하거나 결제할 수가 없었다. 넉 달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일을 가질 수 있어 만족스러워한다. 차별적인 직급과 업무, 승진연수 등으로 공직사회 내 단합을 저해했던 기능직 중 일부직렬이 사무직으로 전환 중이다. 중앙부처는 2009년부터, 지방은 2011년부터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교육청 등 일부에서는 전환을 반대한다. 업무영역이 다르고, 시작이 달랐다는 이유를 댄다.
본지는 이와 관련, ‘사무’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을 소개하고, 효과적인 운영 및 제도의 정착을 위한 개선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중앙부처 2011년까지 34.5% 전환
지방은 2011년 시작, 20.8% 전환
서울시, 동주민센터 등 현업부서 배치


서울 자치구에 근무하는 K씨는 6급이다. 그런데 K씨는 부서 직제 상 토목9급 직원보다 밑에 있다. 기능직이기 때문이다. 통상 행정기관 직제는 일반직을 기능직보다 위에 두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업무가 비슷한 기능직과 함께 다른 책상을 받았다. 6급으로 승진하기 전에는 6급 계장을 정점으로 7급, 8급, 9급 순으로 배치된 뒤 자신의 자리를 배정 받았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9급이라도 일반직일 경우, 연치(年齒)상으로는 아들 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윗자리’에 앉았다.

기능직 93% “차별 있다”, 전환의 이유

기능직 공무원은 크게 국가직의 경우 워드ㆍ건축ㆍ운전ㆍ방호ㆍ조무 등 10개 직군, 21개 직렬, 36개 직류로 분류된다. 지자체 기능직은 직렬과 직류가 각 1개씩 늘어난다. 이중 ‘사무’ 또는 ‘조무’ 직렬은 다양한 업무를 접하고 경리, 예산, 서무, 기획, 관광 등의 업무를 맡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기계, 전기, 화공, 통신, 교환 등은 전직(轉職)이 없는 한 해당 분야에서 일정한 업무만을 담당한다. 지방의 경우 ‘지방공무원임용령’ 제28조가 전직의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탓에 전직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 기능직 공무원은 전체의 13.3%인 12만9142명이다. 워드와 같은 ‘사무’ 관련 기능직 선발을 거의 하지 않았던 2008년 6월을 기준으로 했다. 국가기구별 기능직 수는 행정부 12만5402명(국가 4만3723, 지방 8만1679), 입법부 431명, 사법부 2833명, 헌법기관 476명이다. 기능직은 1등급에서 10등급으로 나뉘었고, 1999년부터는 ‘급’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2011년 4월에는 10급이 없어져 일반직과 같은 직급체계를 가졌다.

그렇지만 기능직 공무원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차별적 대상이었다. 자리배치는 물론이고 승진연한에서도 일반직 공무원과 차이가 많았다. 이런 이유는 ‘행정기구 및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얽매였기 때문이며, 이는 정원기준의 약 75%가 하위직급인 8ㆍ9급에 집중적으로 배정되는 원인이 됐다. 담당 업무 역시 국장 등 고위공무원의 비서 역할을 하거나 일반직의 보조업무를 수행해 업무만족도가 일반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하재룡 선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기능직 공무원의 93.0%(매우 그렇다 64.1%, 그렇다 28.9%)는 ‘인사 상의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를 포함해 차별을 받지 않았다는 응답은 1.9%에 불과했다. 반면 행정직은 54.8%가, 기술직은 51.6%만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응답해 직종 간 처우차별에 대한 인식이 매우 컸다. 이런 조사결과는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응답(67.0%)으로 이어졌다. 기능직은 83.3%, 행정직은 54.1%, 기술직은 54.9%가 전환에 찬성했지만 찬성비율은 처우차별 조사와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올 12월 직종개편, 기능직 ‘역사 속으로’


2007년 12월14일 체결된 ‘2006 정부교섭 단체협약서’는 기능직 전환의 시발점이 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행정안전부는 2008년 4월28일 당정회의를 갖고 기능직의 통합ㆍ단순화에 공감했다. 2009년에는 국가공무원법, 2011년에는 지방공무원법이 개정돼 ‘사무’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이 이뤄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9년 7월1일 ‘사무’ 기능직 전환지침이 시행된 후 그동안 7차례의 전환시험이 실시됐고, 2011년 말 현재 43개 기관에서 4053명(34.5%)이 전환했다. 지자체는 2011년 서울을 제외한 시ㆍ도 15곳에서 1730명이 전환시험을 치러 일반직으로 전환했다. 시ㆍ도 별 전환인원(연도가 표시되는 않은 곳은 집계가 끝나지 않은 지역)은 부산 371명(2011년 196, 2012년 175), 대구 84명, 인천 178명(2011년 88, 2012년 90), 광주 90명, 대전 136명(2011년 82, 2012년 54명 면접 전 현황), 울산 63명, 경기 118명, 강원 103명, 충북 63명, 충남 77명, 전북 106명, 경북 321명(2011년 174, 2012년 147), 경남 249명, 제주 82명(2011년 53, 2012년 29명)이다.

서울시는 2012년 첫 전환시험을 실시했고 이 결과 전환대상 939명 중 미응시ㆍ과락 등을 제외한 744명(서울시 138, 자치구 606)이 일반직으로 전환했다. 직급별로는 서울시의 경우 6급 5명(행정 4, 전산 1), 7급 39명(행정 38, 세무 1), 8급 94명(행정 92, 사서 1, 사회 1)이다. 자치구는 751명 중 606명이 전환했다. 직급별로는 행정6급 4명, 행정7급 183명, 8급 381명 (행정 379, 전산 1, 사회 1), 행정9급 38명이다.

행정안전부는 2013년 12월12일 공무원 직종개편이 시행되기 전까지 2차례 전환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직종개편 이후 미전환 기능직공무원은 ‘기능직’이라는 용어가 폐지되는 이유로 관리운영직군으로 별도 운영된다. 운전ㆍ방호직의 경우 행정직 또는 기술직군 내 운전직렬 또는 방호직렬을 신설해 전환하고, 관리운영직군 내 각 직렬은 행정직ㆍ기술직 중 유사직렬로 전환하기 위한 시험을 실시한다. 전환을 거부하거나 전환시험 불합격자 등은 관리운영직군에서 자연 감소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 ‘사무’ 기능직의 일반직 전환 잔여인원 20%와 전환시험 불합격자에 대해 직종개편을 통해 2014년에서 2016년까지 일반직으로 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정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 해소가 제도성패 좌우

‘사무’ 기능직 전환의 효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행정안전부가 2011년 3월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직ㆍ기능직공무원 응답자 중 72.4%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인력 관리 효율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역시 ‘새로운 행정수요에 맞는 인력재배치가 가능해졌고, 일반직의 하위직이라는 인식이 있던 기능직 명칭이 사라져 사기진작은 물론 공직사회 안에서의 불필요한 갈등이 완화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제도운영의 성패가 걸려 있다. 이런 차별은 기능직 공무원이 공개채용시험, 특히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사했다는데서 출발한다. 교육청과 법원공무원 노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외면상 무조건적인 일반직 전환을 반대하고 있지만 실상은 필기시험 없이 추천과 면접전형 만으로 공무원이 된 기능직 공무원은 자신들 일반직 공무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2012년 11월24일 전국 시ㆍ도 교육청 일반직공무원노조는 11월24일 국회가 공무원직종 개편 관련 공무원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대선을 앞두고 선거 전략에만 매몰돼 있는 여ㆍ야가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전격 통과시켰다”면서 “수십만 일반직 공무원의 반대의견을 완전히 묵살한 비민주적 행위이다”고 비난했다.

공직사회 내에서의 은연 중 내비치는 차별적 인식도 여전하다. 서울 자치구 과장급 공무원은 “기능직은 자기 영역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전환자에 대한 업무평가 결과와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행정안전부는 “일반직 전환자의 업무역량이 기존 일반직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며 “2012년 1월 실무역량 향상을 위한 집합교육ㆍ사이버교육을 의무화도록 하는 내용의 전환지침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또 기능직 출신 전환자에 대한 보직이 현업위주인 것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한 자치구는 전환자 25명 중 6급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현업부서에 발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환자들은 현재 시보기간이다. 시행 6개월 후 상반기 인사 때 보직을 부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선천적’ 딱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5년여 전 K구에서 퇴직한 4급 공무원은 ‘촉탁’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았다.

결국 일반직 전환 공무원에 대한 기존 일반직 공무원의 인식 전환, 그리고 전환 공무원들의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환자 중 “차라리 기능직일 때가 좋았다”는 하소연이 최대한 이른 시간에 없어질 때 당초 기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方鏞植 기자 / bays1@sijung.co.kr

■ 기능직공무원 어떻게 운영 됐나
일제 때 ‘촉탁공무원제’로 시작


1949년~1963년 ‘단순노무’ 공무원
1963년 일반직공무원으로 편입
1981년 공무원법 개정으로 신설
2009년 중앙, 2011년 지방 폐지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에 대한 효과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조선인 중 일부를 ‘촉탁공무원’으로 임용해 썼다. 기능직공무원의 기원으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촉탁’이라는 낮춤용어로 불리는 공무원이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식민지 시절 일본이 남긴 각종 법령을 번안하거나, 그대로 베끼는 계수법으로 지속했다. 1949년 8월12일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돼 공무원은 별정직ㆍ일반직으로 구별됐다. 그러다가 1963년 <국가공무원법> 제4차 개정으로 일반직 공무원으로 편입됐다. 1963년 이전 일제시절 촉탁공무원은 별정직으로 편성돼 ‘단순노무종사’ 공무원으로 불렸다.

1981년 4월20일 <국가ㆍ지방 공무원법>이 개정되면서 ‘기능직공무원’이라는 새로운 경력직이 생겼다. 일반직은 이전의 1~2급, 3~4급(갑ㆍ을), 5급에서 1~9급으로 변화했다. 기능직은 1등급에서 10등급으로 분류됐다. 1998년 12월31일 공무원임용령 개정으로 1999년부터는 ‘등급’이 아닌 일반직과 같이 ‘급’으로 개선됐고, 2008년에는 기존 ‘사무보조’에서 ‘사무’로 명칭이 바뀌는 등 차별적인 요소가 일부 줄었다.

기능직공무원의 경우 대부분 고용직 등과 같은 타 직종에서 전환 혹은 특별채용 형식을 빌려 채용됐다. 지방기능직은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전력공사, KBS, 상수도 등의 공과금 부과징수요원을 동사무소(현 동주민센터)에서 일괄적으로 근무하게 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들 공과금 부과징수요원들은 고용직 혹은 일용직에서 기능직공무원으로 대규모 전환됐다.

이런 과정에서 기능직공무원들에 대한 차별적 관행들이 생겼다. 일반직공무원 입장에서 볼 때 공개경쟁채용시험을 통해 입사한 자신들과, 배경 등으로 ‘무시험’ 전형으로 입사한 기능직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기능직공무원이 승진ㆍ인사 등에서 차별을 받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필두로 공무원단체 내부에서 힘을 축적한 기능직공무원들은 ‘단체’를 통해 기능직공무원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단체 내 일반직공무원들도 초창기 힘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직공무원 제도의 차별철폐를 정부에 요구했다. 그 결과 2007년 12월14일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체결된 ‘2006 정부교섭단체협약서’에 제도개선 내용을 담았다. 이후 2009년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임용령 개정으로 중앙정부 안 ‘사무’직렬 기능직공무원에 대한 일반직 전환시험이 시행됐고, 2011년에는 <지방공무원법> 등이 개정돼 지자체 근무 ‘사무’직렬 기능직공무원의 일반직 전환이 이뤄졌다.

한편 법률 개정으로 기능직공무원은 1981년 신설된 이후 33년 만에 사라진다. 또 기능직공무원제 폐지로 공무원직종은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으로 대별되며 경력직은 일반직ㆍ특정직으로, 특수경력직은 정무직ㆍ별정직으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