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 추경 후 예산지원…서울시 2천억 지방채 결단
정부 선 추경 후 예산지원…서울시 2천억 지방채 결단
  • 이승열
  • 승인 2013.09.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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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구청장협의가 지난 6월4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유아 무상보육사업의 중단없는 추진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구청장협의회는 올해 무상보육 정책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서울시와 자치구 부담분 및 하반기 보육예산 지방 분담금 부족분을 국비로 지원할 것과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을 조속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무상보육을 둘러싼 싸움에서 서울시가 일단 기세를 접었다. 2000억원의 빚을 내서 올해 부족한 비용을 막기로 한 것. 이는 정부·여당이 요구했던 추경 편성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보편적 복지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에서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일 뿐 이제 공은 중앙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무상보육비용 국비지원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영유아보육법>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것.
정부·여당과 서울시의 이번 갈등 과정은 무상보육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들을 함축하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올해 자치구 부족분까지 서울시가 감당
강남ㆍ서초ㆍ종로ㆍ구로ㆍ중구 5곳은 제외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처리 국회 압박
‘보편적 복지 확대’ 국민의 소리 들어야




[시정일보]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5일 시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서울시가 2000억원 규모의 빚을 내 올해 필요한 무상보육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의 이번 조치는 올해 무상보육비 부족분은 2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충당하고 자치구의 재정적 어려움을 감안해 자치구의 부족분까지 올해에 한해 지원하겠다는 것. 단 25개 자치구 중 이미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 요구를 받아들여 지원을 받은 강남·서초·종로·구로·중구 등 5개 구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시는 대신, 올해는 지방채를 발행해 넘어갈 수 있지만 <영유아보육법>개정안을 하루바삐 통과시켜 지자체의 재정난을 해소하고 무상보육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고지원 비중을 서울시는 20%에서 40%로, 지방은 50%에서 70%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유아보육법>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여당과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10개월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의 지방채 발행으로 무상보육 비용과 관련된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싸움은 일단락됐다. 당장 올해 써야 할 돈은 마련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박원순 시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해 불거졌던 서울시의 무상보육 홍보 논란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함에 따라 무마된 모습이다.

무상보육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 실천을 위한 행보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험대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 드러난 중앙부처와 지자체, 또는 여야의 무상보육에 대한 갈등은 여러 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의 부작용인 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보편적 복지는 국민의 시대적 요구라는 사실을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을 통해 정치권에서 인식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상보육에 관한 논란은 지난 2011년 1월 민주당이 3+1(무상급식·무상의료·보상보육+반값등록금)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대책없는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같은 해 5월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가 2012년 3월부터 모든 만 5세 아동의 교육 및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만5세 공통과정’을 도입·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여당 안에서도 혼란이 빚어졌다. 이 제도는 만 5세 어린이에게 의무·무상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의무교육을 10년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복지 재원의 문제뿐 아니라 보편적 복지와 맞춤형 복지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무상급식이라는 화두 아래 펼쳐진 ‘6.2지방선거’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실시했던 ‘8.24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에서 연이어 야당이 승리하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는 등 복지가 이슈가 된 3개의 선거·투표에서 연이어 패배하자 여당 안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8월에는 황우여 당시 원내대표가 ‘0세부터 전면 무상보육 검토’를 발표했고 10월에는 ‘맞춤형 복지와 무상급식의 단계적 확대’가 핵심인 ‘박근혜식 복지’가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채택됐다. 이어 12월에는 <만0~2세 영유아 전 계층 무상보육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펼쳐진 총선과 대선에서도 복지는 여전히 화두가 됐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보편적 복지의 확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총선에서 ‘0~5세 전 계층 양육수당 지원’과 ‘5세 이하 아동 보육비용 전액 지원’ 공약을 각각 들고 나왔으며, 9월 보건복지부가 재원 부족을 이유로 ‘0~2세 전면 무상보육’을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나오자 경쟁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11월에는 지자체에 대한 무상보육비용 국고보조율 상향을 골자로 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위원회를 통과했다.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모두 (세부 정책에서 차이는 있었지만)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들고 나왔다. 박근혜 후보는 “만 5세까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3년 동안의 이러한 흐름을 돌이켜 보면 무상보육은 이미 시대적 요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1년 이후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쪽이 선거에서 계속 승리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복지 확대를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여당이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함께 들고 나와 복지정책에 대한 대립각이 약해진 것도 정치권이 그 시대적 요구를 전반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최근 무상보육과 관련된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의 갈등은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따르는 데 있어서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단순히 무차별적 포퓰리즘의 결과로 보고 복지 축소의 근거라 주장하는 것은 민심의 요구를 거스르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과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채로 정책을 밀어붙여 온 측면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논의와 합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특히 정부는 대통령의 대표적인 복지 공약 사업의 추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수준의 연금을 주겠다는 기초연금 도입 △비정규직 사회보험료 지원 △4대 중증질환 무상의료에서 3대 비급여(상급병실, 선택진료, 간병비) 포함 등은 모두 사업 추진 과정에서 원안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영유아 보육비의 국비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정부·여당의 반대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사실 역시 대통령의 무상보육 공약에 반하는 처사다. 정부·여당은 이러한 지적을 재검토하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다시 풀어내야 한다.

또 정부는 복지 정책에 있어서 지자체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함께 논의하고 합의 하에 추진해야 한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주민의 복리사무를 처리하는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복지정책의 추진은 불가능하다.
특히 경기 침체 등으로 세수 확보가 어려워진데다 복지사업의 확대로 각 지자체들의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해진 만큼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사업은 지자체의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중앙정부가 책임진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인 지난 1월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단위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라고 말한 바 있다.
李昇烈 기자 / sijung1988@naver.com

 

서울시 빚 다시 3조원대로 늘어
무상보육 정부약속…중앙에 지방채 인수 요청



무상보육을 위한 서울시의 지방채 발행은 보육예산 부족분에 대한 부담을 두고 정부·여당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며 중앙정부와 국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므로 늘어난 서울시의 부담을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예산 지원을 조건으로 서울시에 추경 편성을 요구해 왔다. 결국 이달로 무상보육 예산이 바닥날 위기에서 서울시가 빚을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울시는 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 10월 중순 경 지방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약 4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세수결손분에 대한 세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당장 부족한 9월 무상보육 필요분은 보건복지부에 추경 계획을 통보해 받을 수 있는 돈으로 지급할 수 있을 전망이다. 서울시가 이러한 계획을 내놓음에 따라 정부는 1422억원의 국비 부담분을 바로 집행하기로 했다.
시는 지방채 2000억원은 시의 책임 아래 발행하는 것이지만 무상보육이 중앙정부의 사업이며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던 것인 만큼 중앙정부에 인수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지방채 발행으로 서울시의 부채는 다시 늘어나게 됐다. 지난해 서울시 부채는 2조9661억으로 3년 만에 2조원대로 줄었으나 이번에 다시 3조원대로 늘게 됐다.

이와 관련 박원순 시장은 “무상 보육을 위한 지방채 발행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야만 한다”며 “더 이상 지방 재정을 뿌리째 흔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박 시장은 “이번 지방채 발행 조치는 서울시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 약 4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전망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상보육비 부족분 3708억원은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그렇지만 시민의 기대와 시민의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 서울시의 대승적 결단을 중앙정부가 헤아려 주기 바라며 이제는 중앙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것.
한편 박 시장의 발표에 대해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회장 노현송 강서구청장)는 논평을 내 환영의 뜻을 표했다.

협의회는 “무상보육을 중단할 수 없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출구조조정과 지방채 발행의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보낸다”며 “구청장협의회도 무상보육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