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며
독자기고/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며
  • 시정일보
  • 승인 2013.11.0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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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 이근미 등록지원팀장

11월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 날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맞서 국권회복을 위해 항거하고 헌신한 애국선열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이들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1939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처음 제정한 이후 올해로 74년을 이어온 뜻 깊은 기념일이다.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한 이유는 1905년 11월17일에 체결된 을사늑약의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이었으니 이들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현재화한다는 의미에서 광복절만큼이나 뜻 깊은 날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순국선열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처 창설 이후 50여년 간 이어오던 보상체계를 대폭 개편하여, 독립유공자의 유족 범위를 보상받을 유족이 없을 경우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1명까지 확대하는 등 애국선열의 영예성을 제고하였지만 아직 일부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생활고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작년 이즈음이다. 순국선열의 날 사흘 전이었던 11월14일, 광복 67년 만에 중국에 안장된 애국선열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었다. 이날 유해가 봉환된 애국선열은 이경재(1875~1920) 선생, 이응선(1905~1971) 선생, 선우완(1925~1968) 선생이다. 3인은 각각 2009년과 2010년에 건국훈장이 추서됐고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그 유가족에게 보상과 지원을 하고 있다. 타국에서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번영만을 기원하시다 돌아가신 지 짧게는 40여년에서 길게는 90여년만에 그 유해가 조국으로 봉환된다니 참으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조국의 품에서 영면하시기를 기원해본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적,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국제적인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 이어 김영훈 세계에너지협의회(WEC) 공동의장까지 국제단체 수장으로 한국인이 연이어 선출되며 활발한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대, 지역, 계층 간 갈등에 대한 사회통합을 이루어야하며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되살려 대한민국의 품격을 드높이고 세계에 앞서가는 일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열이 이루려던 조국의 자주독립과 번영에 미약하게나마 기여하는 길일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스물 셋의 나이로 상해에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1932년 4월29일, 일본 군 수뇌부에게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고 스물넷에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의거 한 시간 전 김구 선생을 만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돌연 김구 선생의 시계와 자신의 시계를 바꾸자고 하면서 “제 시계는 6원짜리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까 제 것과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 쓸 일이 없으니까요”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금으로 치자면 24살로 아직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의 나이에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의연했던 윤봉길 의사의 마음을 생각하니 새삼 숙연해진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오로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한 애국정신을 다시 생각해 보며 오늘같이 평안한 하루를 있게 해준 애국선열에게 감사와 묵념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