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2억원도 안 되는 한글의 가치
특별기고/2억원도 안 되는 한글의 가치
  • 시정일보
  • 승인 2013.11.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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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동대문문화원장)

김영섭 동대문문화원장

[시정일보]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문화란 단어를 되뇌이게 되는 것은 아마도 문화원을 운영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모든 문제를 문화적 측면에서 풀어나가려는 습관도 생겨나서 이제는 심할 경우 어떤 문제에 닿았을 때 그 실체가 문화적이냐, 비문화적이냐라는 관점에서 해법을 찾는 경우도 생겼다.

문화는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인지가 깨고 세상이 열리어 밝게 됨.- 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난 이후 필요에 의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이때부터 인간으로서 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기록을 위한 문자 즉 글이 생기면서부터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단순한 인간문화에 문명이라는 옷이 입혀지게 되면서 인류는 무한한 발전을 이룩해 오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무리 즉 민족 간의 자부심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민족은 과거 글이 없었고 중국의 한문을 빌려썼다. 드디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면서 우리 민족도 우리만의 글을 가지는 문명민족이 된 것이다. 바로 훈민정음이다. 하지만 그냥 우리글이고 무심코 쓰다 보니 우리글에 대한 소중함과 우수성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

지구상에는 아직 자신들의 문자를 가지지 못한 민족이 매우 많다. 때문에 힘 있는 강대국의 문자를 공통의 글로 사용하는 나라도 많이 있다고 한다. 자기나라의 글을 다른 나라에서 사용을 한다? 얼마나 자부심이 생기는 일이며 또한 국격이 상승하는 일인가 말이다. 한류니 뭐니 해서 문화를 수출한다고 호들갑들을 떠는데 문자의 보급이야말로 문화수출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수년전 인도네시아의 한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말만 가지고 있을 뿐 자신들의 글이 없어 고민하며 전 세계의 문자들을 조사한 결과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자신들의 표기문자로 채택하였다. 당시 찌아찌아족의 교사가 한국에 와서 한글을 배운 후 자신의 나라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의 훈민정음학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 사업에 나섰던 걸로 알고 있다. 훈민정음학회에서는 ‘바하사 찌아찌아’라는 교재를 만들어 교육하였다.

그러던 것이 최근 훈민정음학회를 지원하기로 했던 모 재단에서 후원을 중단하면서 찌아찌아족의 한글교육이 중단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에 소요되는 예산이 고작 연간 2억 남짓이라고 한다. 물론 정부 측에서도 나름대로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한글문자가 공식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국가간의 외교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고, 또 찌아찌아 부족들의 도시인 바우바우시와 체결한 MOU가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내부의 다민족 사이에서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애초에 부족어라고 했으면 됐을 것을 너무 성급하게 공식문자라고 해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번을 그렇다 치더라도 문자사용은 해당국가와의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므로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한글을 채택하는 문제는 해당정부가 정할 사항이며 원만하지 못할 경우 민족적 감정 등으로 외교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왜 당초에 몰랐을까? 그리고 충분히 대처할 수 없었을까? 또 그동안은 아무말 없다가 예산문제로 일이 불거지니까 그때서야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 그 좋은 머리로 입으로만 한류를 말하고 한글의 세계화니 떠들면서 한번도 검토해보지 않았다는 말인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번 일은 백번을 말해도 정부의 책임이 큰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이제 정부에서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하지 못할 일을 민간차원에서 힘들여 만들어 놓았으면 문제점은 무엇인지 향후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할 것이며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지금 한글은 한류의 열풍 속에 수많은 나라에서 정규교과과정의 채택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가치로 따지기조차도 힘든 귀한 우리 한글이 정작 우리나라 관료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단돈 2억의 가치도 없을 정도로 취급되어서 되겠는가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