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지방 방만경영 견제 필요하지만 ‘파산제도’는 시기상조
<창간기획>지방 방만경영 견제 필요하지만 ‘파산제도’는 시기상조
  • 이승열
  • 승인 2014.05.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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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23년 과제와 전망 ②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이 거론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자치단체장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상수 전 시장의 대형 개발사업으로 인한 인천시의 재정 악화다. 위 그림은 안 전 시장이 추진했던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신도시 조감도.
[시정일보]대한민국 국호를 사용한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였던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5월, 향후 지방자치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을 내다 보며 지면을 펼치기 시작했던 본지의 지령이 벌써 26년에 이르렀다.
본지는 지방자치 발전이 대한민국 국운융성의 주요 재원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지난 26년 동안 한결같이 그에 부합하는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행보를 지속할 것을 독자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창간 기념일을 즈음해 매년 어김없이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현안을 집중 조명해 온 것은 본지의 창간목적을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으며, 올해도 네 번에 걸친 연속 기획물로 독자들과 현안해결을 함께 고민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려 한다.
네 개의 주제는 기초선거 공천문제와 재정위기, 선거문화 선진화, 복지 등으로, 이번호에서는 지방재정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를 다룬다.
-편집자주-


지자체 무리한 사업추진 재정악화ㆍ세금 낭비
당정 ‘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 책임성 강화

전체 조세수입중 지방세 54조 불과 ‘20%자치’
국세-지방세 불합리ㆍ복지 확대 재정난 허덕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위기는 악화일로에 있다. 최근 안전행정부가 공개한 <2014년도 지방자치단체 통합재정개요>에 따르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2013년 51.1%에서 2014년 44.8%로, 재정자주도는 76.6%에서 69.2%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자체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자체사업 비중은 지속 감소추세(’13년 38.3%→’14년 37.6%)인 반면 보조사업 비중은 증가추세(’13년 41.4%→’14년 42.4%)이며, 자체수입으로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의 수(’13년 38개→’14년 78개)도 대폭 늘고 있는 등 자체수입 구조가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가 전체 조세수입 271조원 중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54.5조)에 머물고 있어 이른바 ‘20% 자치’에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12년 기준 지방자치단체의 부채는 43조원이며, 여기에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 지방교육재정 부채까지 더한 지자체의 총부채는 약 1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여당, 지자체 파산제도 추진


지방재정 위기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떻게든 현재의 지방재정 문제를 손봐야 한다는 것엔 중앙과 지방, 여야가 이견이 없다. 그러나 대책은 가지각색이다. 그 이슈 중 하나가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다.

지난 1월14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재정의 건전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동시에 책임성도 높이는 지방파산제도 도입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이 입을 열자 안전행정부와 국회 입법조사처도 화답했다. 같은 달 26일 안행부는 만기 부채를 30일 이상 갚지 못하면 파산을 선고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 입법조사처가 2월6일 <지방재정 위기실태와 재정건전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일부 지자체가 열악한 재정 여건에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재정 악화와 세금 낭비를 초래했다”면서 “방만한 경영이 지속될 경우 파산선고제 도입을 통해 지자체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의 선전포고에 지방은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전국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는 3월11일 대표회의를 열고 “국세와 지방세의 불합리와 복지정책 확대에 따른 재정난 등 근본적인 개선안 마련은 외면한 채 파산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제도 시행에 앞서 그간의 감세정책에 따른 재정결손을 보전하고 국고보조율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며, 지방이 재정의 자주성과 자기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먼저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역시 3월13일 “파산제도는 지방재정난의 책임을 지방에 전가하고 지방자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찬성 - 단체장 방만경영 견제


정부·여당이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를 도입하려 하는 일차적 이유는 무엇보다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방만경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시다. 인천시는 한 해 8조원의 예산을 굴리는 거대 광역자치단체이지만 지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나 소속 공무원에게 줄 복리후생비를 밀린 일이 있을 정도로 재정이 좋지 않다. 인천시의 예산 대비 채무비율은 2003년 17.5%였지만, 2009년 29.8%, 2010년 37.1%, 2012년 39.8%로 계속 악화되고 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채무비율이다.

인천시의 재정 악화는 안상수 전 시장 시절 벌인 무분별한 대형사업들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안 전 시장은 재임기간 중 송도·청라·영종 등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과 220곳의 구도심 재생사업, 검단신도시·루원시티 건설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채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인천시 외에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세빛둥둥섬, 강원도의 알펜시아 리조트, 용인시와 의정부시의 경전철, 태백시의 오투리조트 등이 지자체 방만경영의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1월 감사원이 발표한 ‘지자체 주요 사업 예산편성 및 집행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일부 지자체가 열악한 재정여건에도 수천억원이 필요한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면서 수요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 청주시의 경우 면적 152만㎡, 사업비 6438억원 규모의 ‘청주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분양시기나 분양가격에 대한 조사도 없이 사업을 진행했으며, 심지어 산업용지가 분양되지 않을 때 시가 최대 1773억원까지 용지를 매입해 주기로 사업시행자에게 약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국립아트센터와 용도 및 규모가 비슷한 2629억원 규모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을 중복투자에 대한 검토도 없이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여전히 선거에서 개발위주나 지역이기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지역주민의 지방정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파산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 - 열악한 지방재정 구조개선 선행

현재 지방재정의 구조에서, 국세와 지방세 세입의 비중은 8대 2지만 중앙과 지방정부의 실제 사용액 비율은 4대 6이라고 한다. 소위 ‘20%자치’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파산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국가와 지방의 재정 분담이 이처럼 비합리적인 가운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재정악화의 모든 책임을 지방에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열악한 지방재정 구조에 대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 지방재정의 위기는 감세정책, 부동산시장 활성화 명목으로 시행된 취득세 감면,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지방비 부담 가중 등이 주요 원인이며,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또 파산제의 적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지자체 파산 선고에는 정치적인 입장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어서 중앙정부가 국가 전체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자체의 경우, 파산 선고 여부에 따라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자체에 따라서 징벌적 파산 선고가 내려지거나, ‘봐주기’로 넘어갈 개연성이 높은 대목이다. 또 지자체의 파산은 국가재정의 대외 신인도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구조상 중앙정부가 지자체 재정부실의 원인을 제공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중앙정부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국가 전체적인 경제 위기가 지방재정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으며, 중앙정부가 특정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 지자체의 세입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국세와 연동돼 있는 지방교부세 및 지방소득세가 감소한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파산제가 도입되면 지자체가 자체적인 복지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지가 아예 봉쇄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과 지방이 함께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국고보조사업에서 지방의 비용 부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파산제도가 도입되면 어느 지자체가 자체사업을 확대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한 토론회에서 “지자체의 모든 운영이 국가의 지침과 승인에 의해 결정된다”며 “모든 자율권이 박탈당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파산한다면 오히려 국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파산제는 시기상조, 방만경영 견제는 필요


지방자치단체의 파산제도 도입에 대한 논란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파산제 도입이 시기상조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과 기능, 재정의 분배, 재정 권한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해, 지방의 재정 자주성과 자립도, 자기책임성이 현재보다 대폭 확보돼야 파산제 도입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

단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징벌적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반드시 파산제도가 아니더라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방 감사원 등, 자치단체장의 방만경영을 견제하는 제도의 도입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李昇烈 기자 / sijung1988@naver.com


지자체 파산제도는 무엇인가?

파산(bankruptcy)은 일반적으로 경제주체가 만기가 된 부채를 갚지 못하는 경우 주로 채권자가 법원에 신청해 법원의 판결에 의해 확정된다. 채무자는 경우에 따라서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파산은 시장 경제주체의 파산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자체는 주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필수적인 공적 주체이다. 즉 공공서비스의 독점적인 공급자로서, 민간기업처럼 대체가 가능한 경제주체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통치권으로서의 과세권을 갖는 정부이기도 하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지자체 파산제도는 ‘지자체에 대한 긴급재정관리제도’를 말하는 것으로, 채무 불이행 등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지자체에 대해 중앙정부가 개입해 강도 높은 재정개혁 및 재정회생을 실행하는 제도를 말한다.



재정위기단체 분류, 안행부장관 판단 중요
외국에선 지자체 파산신청 후 정부가 개입



정부는 지난 2010년 7월 성남시의 지불유예선언(모라토리엄)을 계기로 재정위기에 빠진 지자체 처리를 위해, 2011년 <지방재정법> 및 동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재정위기관리제도를 법제화했다.

지방재정위기관리제도의 핵심은 지방재정위기관리위원회가 지방재정위기에 관한 사항을 심의해 재정위험 수준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지자체를 재정위기단체로 지정하는 것. 이 지정에는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 △예산대비 채무비율 △채무상환비율 △지방세 징수액현황 △금고잔액 현황 △공기업 부채비율 등 6개 지표가 기준으로 사용된다.

재정위기단체로 지정되면 해당 지자체는 재정건전화계획을 수립해 안전행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 이 계획에 관해 지방의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안행부 장관은 재정건전화계획의 수립 및 이행에 대해 지도·권고할 수 있으며, 계획의 수립 및 이행의 결과가 현저히 부진한 경우 교부세 감액 등 재정상 불이익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6개 지표 기준을 넘어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재정위기단체가 되지는 않는다. 지방재정법은 “안전행정부 장관은 … 재정위기단체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 안행부 장관의 재량적 판단을 허용한다. 즉 안행부 장관이 재정위험의 수준이 심각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재정위기단체로 지정하지 않을 수 있다.
외국의 경우 파산의 결정은 △지자체의 파산 신청이 있을 때에 한해 중앙정부가 개입하거나 △재정지표가 일정한 기준을 넘어서면 중앙정부가 자동적으로 개입하도록 하는 2가지 방식 중 하나로 운영된다. 현재 정부·여당은 파산제 도입을 위해 파산 지자체의 지정 기준과 절차, 지자체의 책임 범위, 회생방법 등을 정해 법제화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