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사회안전망 취약…금액ㆍ기간 확대해야”
“실업급여 사회안전망 취약…금액ㆍ기간 확대해야”
  • 이승열
  • 승인 2015.03.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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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복지재단 ‘실업급여 개선방향 토론회’

▲ 토론회 참가자들이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센터장, 김병인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엄승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팀장(사회자),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생계유지 위해 ‘일자리 질보다 재취업’ 급급
빈곤층 유급 노동으로 ‘복지급여 절감’ 노려

‘자발적 실직자’에게도 실업급여 지급해야
‘실업부조’ 도입, 고용보험 사각지대 지원

[시정일보 이승열 기자]최근 실업급여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는 97만명으로, 지난 2012년(92만2000명)보다 6.3%(5만8000명)나 늘어난 숫자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본의 아니게 회사를 떠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비자발적 이직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지난달 27일 서울시복지재단 별관에서 현재 실업급여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개선 방향을 모색해 보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센터장, 김병인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등이 참가해,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고용정책의 흐름과 실업급여 개선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순소득대체율 ‘OECD 최저’

‘실업급여를 둘러싼 최근의 흐름과 분석’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센터장은 “실업급여의 관대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기에는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이 매우 약하다”며 “실업급여의 수준을 적극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센터장은 우선 실업급여가 △실직자에 대한 소득안전망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실업급여 프로그램의 자격효과(entitlement effects) △실업급여의 경기순환에 따른 안정화장치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업급여프로그램의 자격효과’란 실업자들이 ‘유동성 제약’의 문제에 빠지지 않고 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말한다. 즉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기보다는 적합하지 않거나 임금이 낮은 일자리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막는다는 것이다.

‘실업급여의 경기순환에 따른 안정화장치 기능’은,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실업급여가 관대할수록 총수요가 증가해 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 센터장은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업급여는 지급수준과 지급기간이 짧아 실직 후 조기에 재취업하지 않을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즉 실업급여의 순기능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빈약하다는 것. 특히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자녀와 배우자를 홀로 부양하는 가장이 실직한 경우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세계 최악”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OECD가 발표한 자료(2012년 기준)에 따르면, 집이 없고 맞벌이가 아닌 4인 가족의 가장이 실직할 경우 5년 이내 실업급여의 순소득대체율(실업 전 순소득 대비 순실업급여의 비율)은 6%에 불과해 OECD국가 중 꼴찌로 나타났다. 오스트리아(67%), 벨기에(65%), 호주(60%) 등 상위권 국가와 차이가 컸다.
우리나라의 경우 4인 가족의 경우 외에도 독신가정(6%), 자녀 없는 부부(6%), 한부모가정(8%) 등 거의 모든 가족형태에서 실업급여의 순소득대체율이 최하위권이었다.


유럽식 ‘고용-복지연계’ 경향


‘한국의 고용복지연계정책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병인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실업정책은 노동과 복지를 연계해 비경제활동인구에게까지 구직의무를 확대하고 있다”고 최근 경향을 설명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의 취업 활성화정책은 전통적 실업계층이 표적이었으나 현재는 비경제활동인구까지 구직의무를 지우고 있다. 김 연구원은 “한부모, 장애인, 준고령자 등 과거 비경제활동인구로 여겼던 대상까지 고용서비스 과정으로 편입시키는 경향”이라며 이를 ‘노동연계복지’(workfare)라고 설명했다.

노동연계복지는 복지(welfare)와는 다른 의미의 용어로, 공공부조 수급자를 유급노동으로 편입시키는 일련의 정책을 의미한다. 빈곤층의 유급노동을 통해 빈곤의 해결과 복지급여 지출 절감이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최근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직업훈련, 고용자에 대한 채용인센티브, 직접일자리 창출사업 등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고용센터 중심의 공공고용서비스 및 급여행정은 대부분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고용과 복지의 통합을 위한 빠른 취업우선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일자리창출프로그램이나 채용인센티브와 같은 노동시장의 수요를 창출하는 수단보다는, 공공고용서비스 및 급여행정과 같은 취업우선전략을 통한 공급전략이 대세임을 의미한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고용정책 역시 이와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정부가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을 주요 슬로건으로 제시하며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는 것과 맞춤형 고용복지정책 및 취업우선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또 고용과 복지 통합전달체계인 원스톱샵(One Stop Shop)을 확대하고 있는 사실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고용복지센터는 지난해 남양주를 시작으로 9곳이 들어서 있으며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김 연구원은 “고용복지센터는 복지급여 수급자를 고용서비스 과정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급여 확대 ‘한 목소리’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의 복지나 실업급여 서비스 수준에 이른 적이 없기 때문에 유럽의 개혁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김 연구원은 지적했다.

발제 이후 열린 토론회에 참여한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와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우리나라의 실업급여가 사회안전망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더욱 확대해야 하며 실업부조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함께 내놨다.

우선 최 간사는 현재 실업급여의 수급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업에 직면한 많은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실업급여 피보험단위 기간을 180일에서 120일로 축소하고 △소정급여일수를 90~240일에서 180~360일로 연장하며 △자발적 실직자도 실직 후 3개월이 지나도록 실업상태에 있는 경우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 간사는 또 현재 고용노동부가 실업급여 하한액의 하향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자발적인 실업에 대해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현행 수급기준 상 노동자가 근로소득을 포기하고 실업급여를 선택할 수 없다”며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김 소장은 현행 실업급여제도의 개선방안으로 △고용보험 미가입 사업장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수급자격을 완화하고 수급기간을 확대해 수급률을 제고해야 하며 △실업급여의 급여대체율을 현행 40% 수준에서 5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또 장기실업자, 청년실업자, 자영업 출신의 실업자, 단시간 노동자 등 고용보험이 포괄하지 못하는 실업자들에 대한 지원제도로서 실업부조 도입을 주장했다. 실업부조는 국가가 일반회계를 이용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지원하고 취업알선, 직업훈련 등을 통해 노동시장과 연계하는 정책수단이다. 반면 실업급여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고용보험에 대한 기여에 따라 급여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李昇烈 기자 /
sijung1988@naver.com


■ 획일적 구직활동 판단기준

동일 사업장 반복 구직 ‘실업급여 탈락’
시민 소송 승소…‘수급자중심’ 정책 필요




서울시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최근 실업급여와 관련해 한 시민의 소송을 대리 진행해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번 소송은 시민 A씨가 동일한 사업장에 반복해서 구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용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거부한 것에서 시작됐다.

A씨는 16년간 항공사에서 일했으며 2년간 미국의 한인방송국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지난 2013년 3월 퇴직 후 영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종을 중심으로 구직활동을 하던 중 한 취업사이트에서 H어학원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한 달 후 같은 어학원의 다른 부서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으나 다시 탈락했다.

그런데 고용센터에서는 A씨가 동일사업장에 반복해 구직활동을 한 사실을 형식적 구직활동으로 판단하고 실업급여를 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서는 동일 사업장만을 반복해 구직활동을 하는 경우 실업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23일 A씨가 H어학원에 근무를 희망하는 것이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적극적인 재취업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고용센터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상훈 센터장은 이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2013년부터 실업급여 불인정률을 고용센터 평가기준의 하나로 정한 것이 그 배경”이라며 “획일적인 불인정률 목표치로 인해 전례 없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 상식적인 경고 조치 한 번 없이 허위·형식적 구직활동자로 낙인 찍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적극적 구직활동 중심의 실업인정 절차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구직자의 특성에 맞는 실질적인 고용지원서비스와 수급자 중심의 실업급여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우리나라의 실업급여제도
고용보험 가입 된 사업장에서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고용보험 적용사업장에서 실직 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했어야 하며, 비자발적 퇴직자여야 한다. 실업급여는 크게 구직급여와 취업촉진수당으로 구성된다.

구직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 및 실직 당시 나이에 따라 최소 90일에서 최대 240일까지 받을 수 있다. 1일당 구직급여액은 이직일 이전 3개월 동안 지급받은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 일수로 나눈 금액의 50%이며, 하루 상한액은 4만원,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이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1개월 급여 기준 실업급여와 최저임금의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실업급여의 하한액을 90%에서 80%로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취업촉진수당은 조기재취업수당, 직업능력개발수당, 광역구직활동비, 이주비 등이 해당된다.